최근 무리해서 이사를 했다. 너무 무리 했던 탓인지 이사 과정이 순탄하지가 않았다. 매도인과의 문제로 계약이 파기될뻔 한 것을 가까스로 정리하며 예정보다 한달반이나 늦어졌다. 때문에 계획했던 인테리어는 모두 무산되고 바닥 정도만 급하게 수리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기존 마루를 철거하지 않고 그 위에 덮어 씌우는 ‘덧방’ 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덧방’ 을 하고나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닥이 두겹이 되어 그만큼 높이가 높아지고 이로인해 방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것..! 결국 모든 방문을 떼어냈고 방문 없는 집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일단을 이렇게 살아보고 돈 좀 생기면 맞춤 제작해서 달지 뭐~’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을 모두 떼어냈고 처음엔 문 없는 방을 보면서 홀가분하기 까지 했다. 거추장스러운 방문이 없으니 집이 한결 깔끔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24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방문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방문이 없으면 불편한 점
1. 주방에서 요리한 음식 냄새가 집 전체로 구석구석 퍼진다.
특히 집 구조상 주방 바로 옆에 옷방이 있는데 옷에 냄새가 밴다.
2. 에어컨 효율이 떨어진다.
한번 에어컨을 틀면 집 구석구석 냉기가 퍼질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전기세 걱정도 만만치 않다.
3. 손님이 있을 때 옷 갈아 입기가 불편하다.
하필 문을 떼어낸 바로 다음날 아침 우리 부부와 친한 친구가 동네 근처라길래 별 생각 없이 집으로 불렀는데 잠옷 바람이던 아내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방 저방 헤메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내일이라도 당장 방문을 달고 싶지만 아직은 금전적 여유가 없어 그러지 못함에 눈물을 삼킨다. 대신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새로운 관점이다. 평생을 내 곁에 있어왔던 방문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인지 이번 경험이 아니었으면 아마 앞으로도 평생 몰랐을 것이다.
이 생각을 다른 대상들에도 확장시켜본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과 도구는 분명 누군가의 불편과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리라.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물건들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지구 최초의 의자를 만든 사람은 어떤 불편을 겪었길래 만들었을까? 바위에 엉덩이가 배기는 게 싫었던 한 원시인이었을까? 책상은? 컵은? 옷은? 시계는? 가방은? 화분은? 신발은? 양말은?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만물에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게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다보면 나에게 주어진 것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으로 시작해 의외로 뜻깊은 결론에 도달한 하루다. 오늘 느낀 이 호기심 잊지 않고 살아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