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 생각이 이어졌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행동을 했을까?'
'혼나기 싫어서? 관계를 위해서?'
아마도 엄마와의 관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엄마가 공부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었지만, 몸과 마음이 잘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공부하는 척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왜 굳이 불필요한 말을 하고 메시지까지 보내면서 공부 열심히 한다는 걸 티내려 했을까?'
아이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너가 엄마한테 PC방에서 '보카 어쩌고' 그런 카톡을 굳이 왜 보낸 건지 모르겠어. 엄마가 묻지도 않은 거잖아. 그런 메시지를 보내면서까지 엄마를 속이려 한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정말 속상해. 이건 신뢰의 문제야. 대체 왜 그런 거였어?"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몰래 노는 거 정도는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거라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거짓말이야. 그런데 일부러 그런 메시지까지 지어서 보낸 건 도무지 이해가 안돼. 충격이야."
"그냥 엄마에게 좋은 아들이고 싶었어."
"그래. 너가 좋은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그런데 이게 좋은 아들의 모습이야?"
"아닌거 알아. 그래서 이제 안 그럴려고."
"네가 좋은 아들이고 싶었으면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고, 엄마가 공부하라고 했지만 공부하기 싫었으면 오늘은 놀고 싶다고 말했어야 하는거야."
"그냥 그렇게 말하기 싫었어. 엄마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 후로 더 오랫동안 고민했다.
아이가 나와 부딪히는 것을 피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평소에 부딪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평소에도 부딪히는 것이 싫어 나에게 맞추려 노력하며 지냈을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이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궁금한게 있어. 평소에, 친구들한테 불편한 이야기 잘 해?"
"할 땐 하지. 그런데 난 잘 안 하려고 해. 싸우기 싫어서. 화내고 싶지 않거든."
"그런데 누구나 화가 날 때가 있잖아. 그럴 땐 어떻게 해?"
"차분하게 설명해. '나는 이런 거 싫다, 하지 마라' 뭐 이렇게. 아니면 그냥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할 때도 있어."
"그래, 화내는 것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지. 그런데 왜 화내는 게 싫어? 화가 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텐데?"
"엄마가 누나랑 한번씩 싸울 때 엄마가 소리지르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 그걸 보면서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어.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 그럴려면 화내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화가 나는 순간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어."
"그건 화나는 감정을 회피하는거 아냐?"
"솔직히 그런거 같아. 내가 오랫동안 그렇게 하다보니까 이제는 내가 화가 난건지 아닌건지 헷갈릴 때도 있어."
생각지도 못한 고백이었다.
참 긍정적인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가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이, 지금까지 줄곧 어린 아이라고만 여겼는데, 저 안에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니. 어린 아이는 순간순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왔을까. 나는 상처를 준 것이 몹시 미안하고 아이의 노력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그럼 너 정말 힘들었겠다... 엄마가 미안해.
네가 엄마 모습보며 무서웠던 거,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거 그동안 전혀 몰랐어.
엄마가 누나한테도, 너한테도 잘못한 게 많구나.
화가 났을 때 감정을 잘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
엄마부터 노력할게. 너도 너무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네 감정을 잘 느끼고, 다루어 보자."
"엄마, 미안해. 거짓말해서... 다시는 안 그럴게."
아이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흘러나온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 가슴 속에 몰랐던 진실이 있었다.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느라, 감정을 눌러온 그 마음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던 거였다.
나는 그때부터 진짜 좋은 어른이 되리라 마음 먹었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려하고,
나는 아이를 통해 비로소 어른이 된다.
#고등학생 #거짓말 #부모자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