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혼자 하는 건 성장이라는 거잖아

홀로서기를 마주한 엄마의 마음 이야기

by 있는 그대로 엄마

아이가 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서일까.

요즘 가슴 한 켠에 무기력과 공허함이 무거운 덩어리처럼 자리 잡아 나를 힘들게 했다.

퇴근해 집에 돌아 와도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해결했고, 나는 더이상 요리할 일도 없다.

갑자기 넘쳐난 시간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게 바로 '빈둥지 증후군'일까.

이쩌면 이 공허함이 두려워, 나는 그동안 아이를 돕겠다고 애썼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돌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아이의 홀로서기를 '존중한다'고 마음 먹었지만, 실상은 불안과 상실감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스스로 '제대로'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겉으로는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지만, 온몸의 감각은 아이에게 집중되어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플래너를 몰래 뒤적이고, 문제집도 슬쩍 펼쳐봤다. 혹시라도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까봐, 시간이 남아도 외출은 커녕 집에서 대기모드였다.

남는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도, 아이를 위해 쓰지도 못 했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통제였고, 집착이었다.


학교에서 정서행동검사 결과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T점수와 백분위 숫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대충 훑어보고는 한쪽에 던져두었던 그것을, 남는 시간에 뚫어지게 들여다 보았다.

우울/비관 항목.

T점수 55점, 백분위 69점.

'귀하의 자녀에게 뚜렷한 어려움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항목에 비해 이 점수가 높아 신경이 쓰였다.


'얘가 무슨 우울한 일이 있나?'


"정서행동검사 결과를 봤는데, 우울 항목이 '양호함'으로 나왔어. 그런데 다른 항목보다 점수가 높아서...너 요즘 우울한 일 있어?"


"엄마, 나 요즘 진짜 우울했어. 엄마가 나를 너무 많이 혼냈잖아."


"엄마가?"


"엄마 몰랐어? 3월부터 계속 나 혼냈잖아. 공부할 때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매일 뭐라고 했어. 나는 엄마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까 친구들이 위로해주고 그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나는 정말 3월부터 아이를 몰아붙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원래 목표를 세우면, 목표 외의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성격이 방심한 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것, 수업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 하는 것 모두 못마땅했다. 매일같이 닥달했고, 끊임없이 잔소리했다.


"빨리빨리 좀 해!"


나는 아이가 잘 따라오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아이의 독립 선언을 존중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난 결정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를 스터디 카페에 보낸 뒤에도, 나는 의심과 불안에 휘둘렸다. 아이가 내 눈 앞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되었다. 혼자서는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고,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믿었다. 그런데, 조금 더 솔직히 들여다보니, 진짜 두려웠던 건 아이의 공부가 아니라, 아이가 내 곁을 떠나 혼자 남겨진 나 자신이었다.


어느 날 저녁,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가 요즘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서 좀 슬퍼."

"엄마, 근데 내가 혼자 해나가는 건 좋은 일 아냐? 그건 내가 점점 성장한다는 거잖아."

"맞아, 그렇지. 그런데도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

"엄마, 그건 엄마가 이해해줘야 할 것 같아."

"그래, 이해해야지. 아니, 받아들여야지. 아직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점차 익숙해지겠지."


다음날 저녁, 아이는 식사를 마친 뒤, 스터디 카페에 간다고 문을 나서며 인사를 건넨다.


"엄마, 스터디 카페 다녀올게. 요즘 내가 엄마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의 말이 따뜻해서 내 안의 무기력과 공허가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존중과 믿음이 조용히 들어왔다.

이제는 우리 둘,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잘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중간고사 #홀로서기 #빈둥지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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