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는다는 건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 오던 그 해 봄날,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어, 어, 어...쟤...쟤가 왜 저래?'
나는 놀랄 경황도 없이 아이에게로 뛰어갔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이는 책상에 머리를 스스로 부딪치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쾅
"엄마, 숙제 너무 힘들어. 참고 해보려고 했는데, 못하겠어...엉엉엉..."
"뭐? 세상에...너 이렇게나 힘들었어? 하지마, 하지마, 안 해도 돼. 세상에나...그만하자. 당장 그만두자."
초등학교 2학년, 목동에서의 첫 영어 학원 생활이 정확히 일주일만에 끝이 났다.
무서워서 더는 영어 학원에 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영어 공부 안 하는 애가 있나?
울며 겨자먹기로, 교보문고의 파닉스 코너로 향했다.
내가 가르쳐야지.
아이에게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엄마와 함께 공부하자고 약속하고, 요일과 시간을 정했다. 숙제는 내주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만 지키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약속을 성실하게 지켰다. 그렇게 일년동안 둘은 함께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 실력은 느렸지만 차근차근 쌓여 이제 기본기가 제법 자리 잡았다. 계속 같이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이 발음이 콩글리쉬가 되어 가서 영 안 되겠다.
이제는 학원에 갈 수 있겠지. 아이에게 잘 맞는 학원을 찾아봐야겠다.
강압적이지 않고, 효율적이며, 소화할만큼만 숙제를 내주는 곳.
아이는 다행히도 꾸준히 잘 다녔다.
이제 중학교 입학을 바라보고 있으니, 대형 학원으로 옮겨봐야겠다. 여기저기 레벨테스트도 받으러 다니고, 커리큘럼을 비교하여 한 군데를 정했다. 레벨테스트 결과에도 내심 흐뭇했고, 여기를 쭉 다니기만 하면 영어는 해결된다 생각하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달은 다녔을까?
"엄마, 나 학원 그만 다닐래."
"왜? 열심히 잘 다니고 있는거 같더니~~~. 선생님도 너를 좋아해주시고, 잘 챙겨주시고, 엄마는 거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 그냥 꾸준히 다니자~~~."
"엄마, 선생님이 좋긴 한데, 진도가 너무 빨라서 내가 못 쫓아가겠어. 숙제도 너무 많고. 그걸 소화하려면 내가 추가로 더 공부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자니 내가 할게 너무 많아.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진도만 쫓아가기 바쁜 이런 공부...나는 싫어."
그래서 그렇게 또 학원을 그만두었다.
학원 선생님은 '잘 다니고 있었는데, 어렵게 잘 적응하고선, 왜 갑자기 그만 두냐'며 무척이나 아쉬워하셨다. 나 역시 '제발 이번만큼은 잘 다녔으면' 하고 간절한 마음을 품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아쉽고 미련이 남았다.
아이 아빠와 첫째가 말했다.
"응, 믿어. 걔는 그런 공부 방법이 싫은가봐. 난 이해돼."
"그건 딱 봐도 핑계대는 거야. 맨날 그렇게 속으니까, 애가 그러는거야."
주변 엄마들도, 아이가 학원을 그만 두었다고 하니,
"참고 좀 보내봐. 애가 힘들다 해도 보내야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꾸역꾸역 다니다보면 어느 새 적응되고, 그러다 보면 실력이 늘고 그래."
너무 다니기 싫은데, 참고 다니는게 가능한가?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 아닌가? 내가 아이 말을 너무 고지곧대로 믿는걸까? 때로는 힘들어도, 하기 싫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는데, 내가 아이의 인내심과 지구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는걸까?
중학교 2학년 무렵, 우리는 원래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갔다.
또, 요일과 시간을 함께 정했고, 방법과 교재는 내가 정했다. 정확히 1년을 했다.
약속한 대로 성실히 지켰고, 나름의 성취감도 느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내가 감당하기에 영어가 너무 어려웠다. 다행히도 좋은 과외 선생님과 연결이 되어 지금까지 함께 공부 중이다.
중학교 3학년 언젠가이다.
"엄마, 나 예전에 영어 학원 다닐 때, 그만둔다고 했던거, 그거 거짓말이었어. 사실은 놀고 싶었던 거였어. 학원 다니면 숙제해야하니까 놀 시간이 없잖아. 그래서 다니기 싫었던거야."
"아...그랬었어? 엄마는 전혀 몰랐네."
별로 놀라지 않았다. 왜지? 나는 그때 분명 아이의 말을 고지곧대로 들었고, 지금 아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때 무엇을 믿은 걸까?
"근데 지금 좀 후회해. 그때 학원을 좀 열심히 다녔어야 했어. 그랬으면 지금쯤 훨씬 실력이 좋았겠지?"
"그건 그렇지. 그래도 지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앞으로는 꾸준히 하자. 그래야 실력이 늘지."
"당연하지, 이제는 진짜 그만두면 안돼, 망해. 하하."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싱겁게 마무리됐다.
고등학생이 되어 공부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너를 보면 안쓰럽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를 있는 그대로 놓아둔게 잘 한건지 모르겠다. 좀 더 공부를 시켰다면 어땠을까.
어느 날, 책상에 앉아 있는 너를 보다 불쑥 이 말이 나왔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엄마가 네가 어릴 때 공부를 좀 더 시켰더라면, 네가 훨씬 수월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하네."
"엄마, 괜찮아. 예전에 공부 안 했던 거 하나도 후회 안 해. 그런데 지금 안 하는 건 나중에 후회할까봐, 그래서 열심히 하는거야."
당신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이가 언제나 정직한 말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믿음은 아이의 말이 늘 옳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아이가 그때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을 존중해주는 것, 지나고 보니 그것도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