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자기소개서, 길게 남은 마음

by 있는 그대로 엄마

아이의 '스스로 해보겠다'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였다.

그 무렵, 아이들 사이에 '스카우트' 열풍이 일었다.

많은 아이들이 너도나도 스카우트를 지원했고, 학교는 나름의 선발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다. 첫째 때는 지원만하면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대."


아이도 친구들과 함께 스카우트를 간절히 하고 싶어했다.

양식을 보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자기소개서를 쓰겠다고 했다.

애초부터 아이에게 쓰게 하려고 보여준게 아니었다. 내가 쓸 생각이었다.

일기조차 엄마가 검사해야 밀리지 않고 쓰는 아이였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본인이 직접 쓴다고 하니 나도 당황했다.

심사숙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었다.

길지 않아도, 자신을 잘 소개했고, 스카우트에 어울리는 성격을 강조했으며, 열정이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수준으로는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자신의 글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이걸 고쳐야 할까?

만약 내가 손을 댄다면, 그건 손보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 쓰는 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주도성과 확신에 찬 눈빛,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선생님도 초3의 자기소개서가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스카우트를 열심히 즐겁게 잘 할 아이라고 생각할 거라 믿기로 했다.


"정말 잘 썼어. 이 내용이면 충분해. 내일 선생님께 제출하도록 해!"


며칠 뒤, 스카우트에 합격한 아이들이 호명되어 소집되었고, 아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집합 장소로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는 자기 이름은 왜 안 불려진건지 한참을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떨어졌다는 걸 받아들이고는 낙심하는 듯 보였다.


"엄마는, 네 지원서 내용으로 볼 때 떨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엄마가 한번 확인해볼게."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00어머니, 00이 논술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아니요, 논술학원은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 논술학원 많이 보내요."

"네, 우선 스카우트 담당 선생님과 통화해보겠습니다."


마음이 조금 씁쓸했다. 곧이어 스카우트 담당 선생님과 통화 연결이 되었다. 젊은 여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00 어머니, 너무 많은 아이들이 지원해서, 어쩔 수 없이 글의 '양'을 기준으로 뽑을 수 밖에 없었어요. 내용은 좋았지만, 분량이 부족해서 뽑히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이유를 듣고 나니 의문은 풀렸지만,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아이에게 말했다.


“너무 아쉬운 결과야. 하지만 엄마는 네가 쓴 글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너는 스카우트를 하기에 충분히 멋진 아이야. 그게 그 글에도 다 드러났고 말이야. 다만 이번에는 '양'을 기준으로 뽑아서 아쉽게 떨어졌대. 다음부터는 중요한 제출서류 낼 때 엄마랑 꼭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고 내자. 이런 세세한 기준까지도 챙겨야 한다는 걸 오늘 알게 됐네.”


아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스카우트에 참여하러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유난히 오래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내 마음이 참 쓰렸다.


나는 아이가 자기소개서를 스스로 쓰겠다고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스카우트와 자신이 잘 맞는다는 걸 조리 있게 써낸 그 글.

무엇보다 그 글을 자랑스럽게 읽어 내려가던 확신에 찬 눈빛.

그래서 나는 그 글을 고칠 수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의 '혼자 할게요'라는 말에 쉽게 끌려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또 한 번 나는 아이의 '홀로서기'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이의 결심을 믿고 지켜보는 내가 되기로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그때 내 행동이 잘한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

이 글을 쓰고 나서, 아이 친구 엄마에게 스카우트 이야기를 오래된 추억처럼 꺼냈다.


"에구, 좀 봐주지 그랬어~."


맞다. 좀 봐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냥 냈을까?

글에 썼듯, 아이가 보여준 그 확신에 찬 눈빛을 나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대신 써줬더라면 아이는 합격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활동하며, 스카우트의 추억을 남겼을지도.

그렇다면 이 에피소드는 내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후회도 아니고, 자랑스러움도 아니다. 그저 그 중간 어디쯤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여전히 아이의 확신,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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