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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ism Jun 21. 2024

고대의 현실주의자, 손자 (손자병법을 읽고)

전쟁을 싫어했던, 전쟁의 달인

손자병법, 김원중 역

기준으로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2000여년 전 중국은

수백개의 나라가 생존을 다투는 공간이었다.

많은 군주들은 부국강병을 갈망하였고,

이는 신분을 넘어 능력에 따른 등용으로 이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가 수많은 사상가를 낳았듯, "제자백가"와 같이 많은 이들이 나왔다.


아버지를 죽인 초나라에 복수하려던 오자서,

내란에 빠진 제나라 대신 타국에서 출세하려던 손무.

이 둘은 오나라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했고, 이들의 노력 덕에 약소했던 오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고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킨다.


사마천에 의해 "병법을 다루는 학문(병가)"의 시조, 즉 "손자"로 불리게 된 손무.


역설적이게도 그는 전쟁을 싫어하였다.

하지만 손자는 전쟁을 필연악으로 보았고,

이에 그는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신속하고 적은 피해로 이겨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그는 저서를 통해 전쟁을 다루는 자세와,

이기는 방법론을 제시하니,

전쟁을 넘어 경영과 인간관계의 고전이 된 "손자병법"이다.


마키아벨리가 취업 포트폴리오 개념으로

메디치 가문에 "군주론"을 헌정했듯,

손자 또한 오나라 왕 합려에게

"손자병법"을 포트폴리오로 제시하였다.


군주론은 "군주는 악해야 한다."에 가깝다면

손자병법은 "필요할 때만 악해라."에 가깝다.

이 미묘한 차이가 어쩌면 취업 성패의 차이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취업에 실패했다.


군주론에 비해 선해보이는(?) 손자병법,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현실감의 무게는 충분하다.


일례로 손자는 싸우기 전에 외교를 통해 적을 먼저 고립시키고 굴복시키는 게 상책이라 하였다.


이를 위해 간첩의 활용법을 제시하고,

비밀주의 엄수를 위해

누설자를 단호하게 죽일 것을 말하는 손자의 모습에선 냉혹한 현실세계를 엿볼 수 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잘된 용병이 아니며,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용병이 잘된 용병이다."


군주론의 적을 짓밟으란 구절도 진의를 보면,

적을 최소화하되 반드시 대적해야 할 때

철저하게 응징하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Realpolitik"의 헨리 키신저도

전쟁은 다른 수단이 없을 때만 행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현명한 군주는 전쟁에 신중하고,
훌륭한 장수는 전쟁을 경계해야 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국가의 경제력이나 병력은 유한하고,

군주 또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나 주의력 유한하다.


전쟁을 신중하게 대하지 않고

적을 필요 이상으로 만든다면,

"짓밟아야 할 곳"이 능력 이상으로 많아지게 된다.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이상으로 상황을 키우게 되면 "지피지기"가 되지 않으니

역량을 초과하니 필연적으로 위태롭다.


"전쟁은 승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
오래 끄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전쟁을 오래 끌어 민생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하라는 손자의 당부도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생산이 장기간 멈추면서

식량이나 장비 등 자원은 적어지고 비용은 많아진다.


 병사를 가족처럼 대하되

작전을 세세히 말하지 말라는 말은,

병사들의 마음을 얻어 전쟁의 당위성을 높이되,

개별 계산으로 작전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란 의미다.


"군주된 자는 노여움으로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된 자는 화가 난다고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


손자는 군주는 철저히 주변을 관리해야 하는 자로, 호불호를 내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비자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군주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군주에게 희로애락이 있을지라도 휘하 장수들에게 많이 노출할수록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잘못된 조언이나 보고를 올린다거나 

자신들의 의도대로 군주를 조종하는 등

"인의 장벽"이 세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운명은 장난과도 같은가.


이러니한 사실이라면 초나라에 대승한 이후

오왕 합려는 자만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다가

초나라의 부흥을 막지 못하고,

월나라의 군대에 패하여

분을 삭히지 못하고 죽었다.


"좋은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장수가 되지 마라."


이후 손자는 은거하여 손자병법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였으니, 아무리 훌륭한 참모나 장수라도 지도자가 탁월하지 않다면 수가 없다는, 합려의 실패를 본 손자 스스로의 자조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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