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살 때에도,
두부를 살 때에도,
요거트를 살 때에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유통기한.
최대한 긴 날짜를 엄선하여 골라오곤 한다.
이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과연 식품에만 존재할까.
나의 인간관계는 좁고 깊은 편이다.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번을 연락하며
일상을 나누는 편이고,
고등학교,대학교를 함께 보낸 친구와도 마찬가지로 많지 않지만
지금껏 깊은 우정을 나누며 서로를 아끼고 있다.
다들 몸은 멀어도 마음간격은 가까운,
늘 응원해주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가족같은 고마운 친구들이다.
하지만 늘 그 우정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나와 집이 가까워 늘 등하교를 함께 하던 친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각자의 생활에 바삐 움직이느라
연락을 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 덕분에 사이가 멀어지는 친구가 있어도
그럴 수도 있나 보다 넘겼었고 크게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좀 더 굵어지고
타지에서 결혼생활을 하며
아이를 낳고 다시 새로운 친구관계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시절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시절 인연이란,
애를 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고,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불교용어이다.
나에겐 장장 이삼십 년을 넘게 우정을 나눠오던 친구들이 있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고,
누구든 나와 한번 인연을 맺으면 아주 길고 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었다.
모든 만남에는 늘 헤어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내 큰아이는 열살이 되던 해에,
반년 남짓 깊고 진하게 우정을 나누던 친구와 잠시 이별해야 했다.
친구가 외국으로 잠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 어린 마음을 보듬던 친구였다.
시간은 관계의 깊이에 비례하지 않았다.
큰아이는 며칠을 펑펑 울었다.
괜찮다 토닥여주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이별의 아픔이 아이를 좀 더 키워주겠구나.
이 아이는 이별의 슬픔으로 친구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알아가겠구나.
성장은 늘 아픔을 먹고 자라니까
아이는 또 자랐다.
동시에 함께 눈물 흘려주던 나에게도 스스로 위로했다.
어쩌다 보니 시절 인연이 되어있었던 친구가 서운하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다시 인연이 닿으면 만나 지겠지.
너무 서운해하지 말자.
그 시절 너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거야.
지금 수십 년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은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은 무제한 유통기한의 선물 같은 존재들이고,
이제는 그 누구라도
관계에 유통기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유통기한을 좀 더 길게 늘일 수 있는 방법은
그 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과 ,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여전히 내 인연들에게
유통기한 따윈 없었으면 좋겠고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만나면 즐겁고 행복한 관계이길 바란다.
아마도 꾸준히 그렇기를 기도하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잘 보내줘야지 해본다.
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는 것처럼
기한이 지난 관계를 붙잡으면 꼭 탈이 나기 때문이다.
내 아름다웠던 시절을 빛내준, 빛내주고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