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마지막이었다.

by 늘빛


물을 잔뜩 머금은 무거운 눈이 아주아주 많이 내렸던 날.

이곳저곳이 겨울왕국 같았던 그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던 내 아빠는

정기적으로 보는 성모병원일정을 위해 그 무거운 눈을 헤치고 서울로 왔다.


투석과 심장수술, 위수술, 뇌수술 어디한곳 성한 곳이 없었던

각양각색의 병마와 오래도 지긋지긋하게 싸워온 몸은

야위었고 바들바들 떨렸다.


어릴 때 손이 시려서 호호 불면 잡아주던 크고 따스했던 손은

마르고 차가워졌고, 다 큰딸의 수족냉증은 달고 있는 손이 그 야윈 손을 감쌌다.


"아유, 손이 왜 이렇게 차~ 좀 따뜻하게 입으라니까."

잔소리처럼 내뱉은 한마디에 딸의 마음이 시큰하다.

어디 갔을까, 내 아빠의 크고 따스했던 손이.

바들거리는 다리와 손을 꼬옥 붙잡고 걸음마 떼듯 간 병원길,

그게 마지막이었다.


.



긴 병원일정 중에 허기진배가

우리가 늘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겨울의 붕어빵을 생각해 냈다.

눈 녹은 차박차박한 길을 뜨끈한 붕어빵을 사들고 아빠와 나누어먹으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재밌다.

"아빠, 나중에 나중에 아빠 하늘나라가거든, 나 로또번호도 좀 불러주구,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서 나 꼭 꼭 지켜주고, 그렇게 또 지켜보고 그래야 해?

나 괴롭히는 놈 있음 혼내도 주고"

화도 많고 욱하고 한 성미 하던 그 아빠는 간곳없고 그 긴긴 시간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철없는 딸의 철없는 부탁마저 허허 웃으며 들어주는 하회탈 같은 아빠가 있었다.

어디 갔을까, 내 아빠의 불꽃같던 그 성미는.

단팥 가득한 붕어빵을 뜯어먹으며 하하 호호 나누었던 철없는 대화,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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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수술이었던 심장수술을 마치고 아빠는

2년 남짓한 기간을 선물로 받았다.

선물이라기엔 심장의 고통과 투석의 힘듦이 얹혀있어서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느라

지치고 힘든 시간 들이었겠지만,

그래도 그간 본인 곁을 한결같이 지켜주고, 그 성미를 옆에서 받아내 준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말할 시간이 주어졌고,

그토록 애닳던 하나뿐인 딸이, 열심히 노력해서 앞으로 먹고살만한 자격증하나 갖추는걸

옆에서 지켜볼 시간도 주어졌고,

영 못할 것 같은 KIA야구가 승리하는 기적 같은 시간도 주어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새끼들의 재롱과 그 아이들의 선물 같은 조잘거림,

오전 열 시가 되면 걸려오는 딸의 커피 마시자는 알람 같은 전화,

힘겨운 하루 중 달랑 그 몇 분 몇 초가 가장 큰 위로이자, 삶의 끈이었지 않았을까.

그 몇 분 몇 초를 위해 잡고 있던 삶의 끈은 가혹했다.

병마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았을 테니까.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그래도 숨이 붙었을 때 가장으로서 해주어야 할 것들,

내 아내가 나 없이 책임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해두면서,

오늘도 지나갔다, 내일이 올까를 수십 번 했다고 했다.

그렇게 수십 번 지나가던 내일이, 새벽녘 고관절에 무너졌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내 심장이 또다시 철렁했다.

의연하고 단단하게 다져온 내 마음이 이상했다.

머리는 앞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를 예상했다는 듯 냉철해야 한다 했지만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은 떨렸고 무서웠다.

이게 마지막일까 봐.

놀라서 가는 이 고속도로가 몇 번째인지, 셀 수 없이 다녔던 그 길이 오늘따라 어둑했지만

그래도 아빠를 볼 수 있는 길이라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 어둑했던 그 길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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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늘에서 풍족하게 먹고 놀고 쓰던 딸이,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사소한 것 하나에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어릴 때 딸이 대수롭지 않게 사던것들을 안 사는 그 꼴을 보자니

아비의 마음이 아렸나 보다.

딸과 가던 병원데이트에서 그 아린마음을 꼭 감추고 자기가 안 쓰고 감춰둔 쌈짓돈을

내 손에 꼭 쥐어준다.

"너 사고 싶은 신발있다매, 옷도 하나사"

딸은 어떤 돈인지 잘 알기에, "이게 웬 떡이야?"라고 낼름 받아먹고는 차마 쓰지 못했다.


그날도 내 아빠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들의 간식거리와

딸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용돈을 쥐어주며 어서 가보라며 딸의 등을 떠밀었다.

버스에서 어서 가라 인사하던 그 손인사,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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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고관절을 수술하려 입원했던 병원에서

지난날 막힌 심장의 혈관을 재수술해야 한다는 병원의 통지를 받았고,

아빠는 희망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러진 고관절 때문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절망보다

이제 집에서조차 있지 못한다는 현실이 내 단단한 아빠를 주저앉혔다.

가까운 곳에 투석이 가능한 요양원을 섭외해 두고

나는 너무 미안했다. 어느 자식이나 다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어서 어려운 것처럼, 마음도 정답이 없어서 참 어려웠다.

주저앉은 아빠의 무릎 위로 나는 너무 어렵게 미안하다 토해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면서도 미안했다.

멀쩡한 정신으로 들어가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무릎에 엎어져 미안하다 우는 딸에게

아빠는 괜찮다고 했다.


'당신 싫어하는 건 안 할게. 요양병원은 안 가게 해줄게' 엄마는 지난날 아빠와 약속했더랬다.

평생 곁을 지켜온 눈빛만 봐도 아는 내 아내의 굳은 약속이 무너지려는 순간에

내 아빠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나 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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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숨 쉬는 내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만큼,

그 가족들도 내내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려 애를 썼다.

아빠와 한평생을 함께 이고 지고 함께 달린 엄마의 인생이

갈 곳을 잃고 잠깐 멈춰졌다. 애쓴 만큼 멈추는 일이 쉽지 않다.

가속도가 붙어서 이제는 멈추는 법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애둘을 끌어안고 홍길동처럼 먼 거리를 단숨에 날아다녔던 나도

한쪽 구석의 큰 마음이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렸다.

갈 곳 잃은 엄마의 떨리는 손을 잡고 이제는 천천히 걸어가 보자 권해본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줘서, 그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줘서

마지막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아빠가 지켜줘서

우리가 모르던 바깥세상의 테두리를 우리 모르게 든든하게 지켜줘서

두고두고 고맙다.

엄마와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 따뜻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웃으며 울어본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맞다. 아팠던 기억은 흐려지고 본능적으로 좋았던 기억만 크게 키우나 보다.

그렇게 불꽃같은 아빠의 그 성미에 고개를 절레절레하던 내 엄마의 눈에서 그리움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보이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힘든 고비고비 최선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얻지 못할 진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을 꼭 끌어안고 엄마와 천천히 걷다 보면

또 만나지겠지, 이야기보따리 잘 풀면 그 하회탈 같은 아빠가 불꽃성미를 뒤로하고 웃겠지.



그때가 되면 마지막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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