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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Apr 26. 2024

넌, 행복하니?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2001년 개봉한 한국영화다. 임순례 감독, 이얼, 박원상, 황정민, 박해일, 오지혜, 류승범 등이 출연했다.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백상예술대상, 부산영평상, 대한민국영화대상 등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2021년 펜데믹이 한창일 무렵, 명필름아트센터 영화관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20주년 기념 상영회가 있었다.      


그래? 그런데 난 왜 이 영화제목을 처음 들어보지? 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정말정말 안타깝고 아까운 일.      


와라나고 운동


당시에도 이 영화가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의기투합한 사람들에 의해 와라나고 운동이 일기도 했었다. 와라나고는 《이키키 브라더스》, 《이방》, 《비》, 《양이를 부탁해》 등 4편의 영화 재개봉을 요구하는, 관객들의 자발적 운동을 말한다. 이로 인해 몇몇 예술영화관 중심으로 영화들을 재개봉하기도 했다는 얘기. 그 핵심에 있었던 영화가 바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가슴이 서늘해지고, 보고 나면 먹먹해진다. “일출은 멀게만 느껴지는 새벽 두 시, 고된 야근을 끝내고 빈속에 쏟아붓는 깡소주 같은 영화”라고 평한 이동진 평론가가, 왓챠에 별점 만점을 준 몇 안 되는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전국을 떠도는 비주류 남성밴드 멤버들의 음악과 꿈, 인생에 관한 영화다. 딱히 음악을 하지 않는다 해도 어린 시절의 꿈과 현재 남루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치 자신의 스토리인 양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무엇이었지? 한번쯤 그 시절을 뒤돌아보게 하는 영화. 그 시절부터 난 얼마나 많이, 어디로 흘러온 것인지, 그때 원하던 모습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지 묻게 되는 영화. 사는 게 뭔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자꾸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영화. 게다가 ‘심금을 울리는’ 1980-90년대의 익숙한 노래들이 '성우'(이 얼)의 무심한 목소리에 담긴 채 흐르고 넘쳐, 자꾸 울컥울컥하게 하는 영화.      


감상 포인트 하나 더! 지금은 고인이 된 이 얼 배우의 아름다운 한때와, 이제는 한국영화를 이끌어가는 대배우로 성장한 황정민, 박해일, 류승범의 애기애기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귀염뽀짝한 이들의 리즈시절을 한번 감상해 보시라.


영화는 4인조 남성 밴드의 고별인사로 시작한다. 마지막 공연을 끝낸 밴드는 가라오케와 노래방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서울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보컬의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곳이 바로 수안보. 이제부터 그들은 ‘와이키키 수안보 투어리스트 호텔’ 나이트클럽의 전속밴드. 처음 7명이었던 밴드는 4명으로 줄었다가 수안보로 내려가는 휴게소에서 다시 한 명이 빠지는 바람에 달랑 3명이다. 보컬의 성우(이 얼), 오르간 정석(박원상), 드럼의 강수(황정민).      



오랜만의 귀향


고향에 오면 좋든싫든 고향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성우의 귀향을 계기로 고교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 4명이 오랜만에 함께 술판을 벌인다. 그들 중 성우를 제외하곤 전부 약사, 공무원, 환경운동가가 된 상태. 모두 음악과는 절연한 채 생업에 매달려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고교 동창과 조우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느 해 다같이 떠났던 여름바다, 벌거벗은 채 바다를 내달리던, 거칠 것 없고 두려움 없었던, 그래서 온통 장밋빛 미래만 가득했던 젊은날의 서로를 기억할까. 아니면 서로의 신분과 연봉을 가늠하고 빠르게 서열을 정한 후 그 질서에 순응하나. 아니면 내가 갖지 못한 친구의 인생에 대해 열등감을 가진 채 서로를 선망하나.       


지금 너, 행복하니?


술 취한 친구 하나가 성우에게 묻는다.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 중에 너 혼자 하고 싶은 음악하면서 살잖아. 그러니 넌 행복하니... 

누군가 내게 "지금 너, 행복하니?" 이렇게 물으면 난 어떻게 답해야 할까? 어릴 적 어른들이 툭하면 물어보던 "네 꿈이 뭐냐?"만큼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도대체 꿈이 뭐고, 행복이 무엇인가? 우리는 왜 자꾸 남들에게 꿈과 행복을 묻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것의 최대치가 바로 꿈 아닌가? 꿈이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꿈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기준"(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이기 때문이다. 꿈을 묻는다는 것은 "넌 누구냐?", "넌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꼭 밥벌이가 되지 않아도, 꿈을 갖는다는 건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다. 



지미 핸드릭스를 꿈꿨지만 현실은 제자의 쪽방에 얹혀 사는 알콜중독의 기타리스트. 이상과 현실의 간극, 그 절망의 깊이 때문에 밴드 멤버 중 어떤 이는 알콜에, 또 다른 이는 여자, 다른 이는 대마초에 의존하며 병들어 간다. 결국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음악을 포기하고 버스운전을 하거나 아내 가게 일을 돕거나 농사짓겠다며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져간다.


다 떠나고 혼자 남은 성우는 술판이 한창인 가라오케 한구석, 기타를 메고 선 채 노래를 부른다. 이 영화의 가장 가슴아픈 장면. 진상 취객의 부당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맨몸에 기타만 멘 채 울면서 노래부르는 성우. 모니터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벌거벗은 채 바닷가를 뛰노는 영상이 깔린다. 하아... 이래도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이니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나. 


고향에선 동창만 만나는 게 아니다. 첫사랑도 만난다. 그 시절의 첫사랑은 대개 짝사랑이다. 가까이 할 수 없기에 더욱 매혹적인 그대들. 유난히 차갑게 굴던, 노래 잘하던 인희(오지혜)는 남편과 사별한 채 트럭을 몰며 채소행상을 하고 있다. 사는 게 버거워질 때마다 혼자 노래방에 가 실컷 노래 부르며 푼다는 인희. 성우와 인희의 만남은 쓸쓸하다. 


남성 4인조 밴드의 고별인사로 시작한 영화는 혼성 3인조 밴드의 공연으로 끝난다. 수안보에서도 밀려나 여수까지 내려온 성우는 인희, 정석과 다시 밴드를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 씬은 〈사랑밖엔 난 몰라〉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셋의 무대다.  이 장면은 보는 이의 폐부를 파고들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몇 번이나 본 영화인데도 난 이 대목에서 번번이, 또 울컥한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인희에게 ‘그대’는 ‘성우’이자 ‘음악’이다. 성우와 정석의 '그대' 역시 '음악'일 게다. 밴드는 해체되지 않았어. 성우도, 인희도 끝내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어. 마음 졸이며 영화를 보던 우리는 성우의 웃음띤 얼굴을 보며, 이제서야 안도한다. 굿잡! 그래서인가, 이 노래가 내겐 'No Music, No Life',  “음.악.밖.에.난.몰.라”로 들린다. 성우, 파이팅! 인희 파이팅!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웨인 다이어가 말했다. 맞다. 성우야, 네가 왜 음악을 하는지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없어. 지금처럼 그렇게, 네 '오늘'에 충실하며 노래하면 돼! 우린 모두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술 마시고 이 영화 보지 마라!

     

글을 접기 전 해둘 말이 있다. 경고한다!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들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 ‘아저씨’님들아, 제발 술 마시고 이 영화 보지 마라! 필시 울고 말 거다. 울면서 창고에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쓴 기타를 꺼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코드 몇 개를 뚱땅거리다가 기타를 껴안고 기어이... 하아... 또 울 거다. 난 분명 경고했다!! ♣  



* 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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