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아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이쁜 것이 어디 꽃뿐이랴. 풀이며 나무며, 사람도 그렇다. 오래 만나고, 가까이서 부대껴야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자세히 알게 되면 이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세인트 빈센트》에서 빌 머레이가 연기한 ‘빈센트’를 현실에서 만났다면, 오마이갓! 난 혹여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그를 피해 머얼리 돌아갔을 것이다. 이런 인간은 자세히고 오래고 간에 들여다보기도 싫고, 볼 시간도 아까우니까.
그는 사람들을 싫어해. 사람들도 그를 싫어하지.
영화 《세인트 빈센트》(2015)는 테오도어 멜피가 감독하고 빌 머레이, 제이든 마텔, 나오미 왓츠, 멜리사 맥카시가 연기한 미국 영화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제멋대로 사는 빈센트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이쁜 귀요미 올리버의 이야기다.
어쩌다 이웃집에 살게 되어 만난 두 남자의 인연은 베이비와 베이비시터로 시작된다. 10살과 60살. 빈센트는 주당에 골초. 경마에 도박은 물론, 속이고 거짓말하고 욕하고 시비걸고 공중도덕은 죄다 무시하는 백수. 경마장과 술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리고 왔다고 뭐라하는 사람에게 소리지르는 사람이다. 정말 나쁜 사람인지 위악을 떠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살면서 만나게 될까 두려운 인간이다.
그런데 이건 얼핏 봤을 때 얘기고, 좀더 자세히 보면 그 뒤에 다른 사람이 있어요.
이면엔 다른 얼굴의 빈센트가 있다. 올리버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내주고“이 나라는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야. 방어할 줄 모르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방어기술을 가르쳐준다. 딴짓하면서도 올리버 엄마가 우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농담을 던져 위로하는가 하면,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여친의 보험료를 내주기도 한다.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아내의 빨래를 8년간 매주 직접 해서 가져다주는 자상한 남편.
저한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줬고, 뜻을 굽히지 말고, 용감하라고, 크게 말하고, 담대하라고 가르쳤죠.
이 영화의 압권은 올리버가 ‘우리 주변의 성인들’이라는 학교 과제 발표하는 장면이다. 3분 20초 정도의 분량. 올리버는 빈센트의 행적을 나열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상세히 소개하며, 그가 바로 우리 주변의 성인이라고 말한다. 희생하고 포기하지 않고 봉사하는 ‘성인’. 결점투성이지만 아주 인간적인 사람들. 결국 성인도 사람이니까.
누군가 위선(僞善)과 위악(僞惡)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택할 건가. 둘 다 끔찍이 싫지만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난 위악을 택할 것 같다. 표면은 악이라 해도, 내면은 이토록 따뜻할 수 있으니. 물론 이후에도 빈센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내멋대로'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하니까. 그래도 어린아이의 맑은 눈을 통해 그의 속내를 봤으니 이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조금 순해지지 않을까.
뭐 그런 얘기다. 영화 중반부터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장착하게 되는 매직. 외로운 올리버 옆에 빈센트가, 아픈 빈센트 옆에 올리버가 있어서, 둘이 '친구'여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헤드셋을 쓴 빈센트는 집 밖 벤치에 앉았다 누웠다 하며 호스로 화분에, 마당에 물을 뿌리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채. 호스로 여기저기 물을 뿌리다 자기 양말에까지 물을 뿌리며 계속 노래를 따라부른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 평소 같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바로 영화보기를 끝냈을 텐데, 난 왜 저 아저씨의 심심한 물장난을, 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토록 오~래, 자세히 그를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그를 보고 있으니 왜 이렇게 마음이 따듯해지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