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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Feb 07. 2024

2월의 산책

황지우의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

과천은 산책하기 좋은 동네다. 아파트 앞에는 양재천 산책로가 있고, 뒤쪽으로 서울대공원이 있어 저수지 한 바퀴를 돌거나 삼림욕장을 이용할 수 있다. 아파트 가운데에 작은 중앙공원이 있어 마트나 은행을 오가며 공원의 벤치와 오솔길을 만날 수 있고, 아파트 외곽엔 체육공원이 두 개나 있어 아침이나 저물녘에 운동하기 좋다. 또 관악산을 끼고 있어 여름에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입구 계곡에서 발 담그며 놀다가 지치기 전까지 살짝 등산을 해도 좋다. 그중에 내가 애정하는 노선은 서울대공원 산책로와 양재천로다. 물론 그날그날의 컨디션, 날씨, 휴일, 동행 유무에 따라 노선이 달라지는데, 오늘은 나 혼자 서울대공원으로 간다. 서울대공원 코스는 휴일에는 사람이 붐벼 가지 않는데, 평일 코스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집을 나서 근처 초등학교 담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거인의 콧구멍 같은 작은 터널이 보인다. 위쪽은 과천봉담고속도로. 하지만 방음벽이 잘 되어 있어 그런지 전혀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터널 안에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 소리와 예쁘게 꾸민 벽 때문에 아늑하기까지 하다. 터널을 통과해 사과나무밭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멀리 서울대공원 주차장이 보인다. 


문제는 그 사이에 위치한 붕어빵 포장마차다. 언젠가부터 생긴 그 가게에선 늘 꼬소하고 따뜻한 붕어빵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산책하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2개 천 원. 요즘 보기 어려운 저렴한 가격에다 계좌이체도 가능하단다. 보통 밥을 먹고 난 후 부른 배를 안고 산책하게 되는데, 아무리 배가 불러도 한국인이라면 이 붕어빵 지뢰를 피해 가긴 참 어렵다. 디저트처럼 양손에 하나씩 붕어빵을 들고 오른쪽으로 돌면 드디어 긴 산책로가 이어진다. 


그 끝에 동물원까지 가는 스카이리프트 타워가 있다. 그곳을 지나쳐 계속 걷다 보면 어느샌가 다리 위. 그 순간 다리 양쪽에는 저수지, 저 멀리엔 청계산이 우뚝 서 있는,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폿. 어느 계절에 가도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풍경. 순간이나마 모든 근심걱정이 한방에 사라지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어쩌면 난 매번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산책에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저수지를 끼고 왼쪽으로 크게 돈다. 코끼리열차가 지나가는 가운데 도로 양쪽엔 널찍한 인도가 있어 산책하기 좋다. 오른편에 있는 서울랜드를 지나자마자 그 건너편에는 널찍한 잔디밭이 있고 나무 벤치들이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쭉 늘어서 있어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공간이 있다. 그 벤치에 앉아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텀블러의 커피를 마시면,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살아가면 되지, 하는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든다. 물가에 선 나무들.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맨얼굴로 서 있는 나무를 보니 문득 황지우의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가 떠오른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2월. 지금 이곳의 나무들도 이렇게 온몸으로,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밀고 올라오는 중일까. 겨울의 시간들을 버텨내고, 끝내 빠져나오기 위해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불타면서 올라오는 중일까.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그래서 그들도 궁극엔 ‘꽃 피는 나무’가 될 것인가. 그들의 생명력이 볼수록 놀랍고 경이롭다. 


돌이켜보면 내 지난날도 싸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갈등과 대립, 실패와 오해로 지친 시간들이 있었고, 울고 뒤척이고 싸우고 매달리며 그 시간들을 통과해 왔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불면의 밤들을 견뎌내면 어느새 아침. 젊은날의 아침은 늘 리셋의 개념이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밤새 증폭된 분노가 서서히 차오른다. 자신의 무능력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성공은 요행과 연줄로 치부했다. 나의 게으름엔 늘 이유가 있지만, 타인의 불성실은 용납할 수 없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나와 남을 괴롭혔을까. 그조차 젊음의 형벌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르다. 아침이 되면 어느 것 하나 해결되는 게 없어도 그냥 굿모닝! 따뜻한 커피향이면 족하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내 탓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무 곁에 앉아 반짝이는 무심한 윤슬을 바라보면 세상이 살만해진다. 황지우의 다른 시의 한 구절처럼 그저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몹쓸 동경>)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걸 받아들이면 된다. 나무,면 족하다. 굳이 꽃 피우지 않아도 된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이미 나무인 것을. 


오래 살다 보니 시간과 마음을 써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생의 목표가 하나가 아니듯, 가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해서 큰일날 일도 없고, 잘못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솔길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들이 있다. 물론 내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고, 그래도 아니다 싶을 때는 돌아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무뿌리도 돌부리가 있으면 돌아서 다리를 뻗는다. 그래야 숨쉴 수 있고 그래야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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