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sns, 인간관계, 그리고 책임감에 대하여
원래는 글쓰는 시간을 일종의 보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을것같다. 어차피 심적 여유가 없으면 글을 쓰고 싶다가도 이내 메모장에 글감을 추가하는 것으로 욕구를 잠재운다. 그렇게 문장으로 풀어내고픈 소재들을 하나씩 쌓아두다보면 "오늘은 무조건 써야한다" 싶은 날이 온다. 마치 오늘처럼.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에는 주로 공부할 책을 바리바리 싸오는데 오늘은 노트북과 충전기만 가지고 왔다. 가볍고 좋다. 오늘은 좀 가벼워지고 싶다.
올초부터 중순까지는 주어진 소재에 맞는 에세이 같은 글들을 많이 썼다. 내 블로그를 보는 사람들이 조금 늘어나기도 했고, 어쨌든 마이너한 작가로서 최소한 읽기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은 마음 가는대로 문장을 죽죽 나열하는 식으로 글을 써봤는데(제목: 24) 동생이 상당히 잘 읽힌다고 말해주었다. 힘빼고 떠오르는 대로 막 적어도 완결성이 있는 글이 탄생할 수 있구나 싶었다. 앞으로도 꽤 자주 그렇게 써 보려고 한다.
1. 다시 읽기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나면 최소 두세번은 그자리에서 다시 읽어보고, 이후에도 간간히 읽는 횟수까지 합치면 족히 10번 가까이 된다. 글을 특별히 잘 써서라기보단 내가 만든 문장이기에 정이 간다. 또 다시 읽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요리조리 뜯어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내 글을 다시 읽는 이유는 글을 쓰기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이 글쓰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글쓰는 과정뿐 아니라 다 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나를 더 알게 된다. 진실된 글에서 묻어나오는 내 모습을 곱씹다보면 "이게 나구나" 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예전에 심리검사를 했을 때 내가 "자기수용이 낮다"라는 결과가 나왔었다. 그런 내가 자기수용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글쓰기를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2. 감정단어와의 거리두기
글을 쓸 때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꾸밈말들이 있다. 너무. 엄청. 진짜. 정말. 완전.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을 작가의 입장에서 다소 부담스럽게 독자 앞에 들이미는 느낌이라 그렇다. 행간에 담백한 여백을 남겨두어 독자들 스스로가 중요도를 분별하게끔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감정단어들도 필요할 땐 쓰지만 안 써도 될 때는 굳이 쓰지 않는다. 내 글이 비록 감정을 소재로 하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최대한 이성적인 문체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감정에 대한 글이 문체까지 감정적이면 읽는이를 부담스럽게 한다. 물론 그런 글에도 효용은 있다. 글의 완결도에 신경쓰지 않으며 글을 써내려가는 행위 자체를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자 할 때는 감정을 마구 쏟아놓은 글도 좋다. 하지만 그런 글은 주로 일기장에 쓰는 편이고, 공개 플랫폼에서는 자제하려고 한다. (심지어, 성격상 일기장에도 그런 글은 잘 안 쓴다. 감정이 격화되고 내면화되는 역효과를 낼까봐 두려워서다.)
3. 인스타 디톡스
한달전쯤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했다. 내 소식을 공유하는 것이 즐거워 sns를 계속 해왔는데, 어느순간부터 sns 상 사람들의 흔적으로부터 나에 대한 관심도를 유추하는 쓸데없는 짓을 내가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 늦기 전에 인스타 세계로부터 한 발 떼기로 마음먹고 앱을 지웠다. 앱을 지우면 모든 설정이 초기화되어 번거롭기 때문에 예전에도 앱을 숨김처리할지언정 지우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를 위해 조금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원래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모두 올렸는데, 굳이 올리지 않고도 나 혼자 즐김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느껴보는 계기가 됐다. 가끔 정말 올리고 싶은게 있을 때 앱을 다시 깔고 바로 지우는 수고스러운 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인스타를 수시로 들어가볼 수 없게 스스로를 규제하고, 정말 궁금한 사람의 소식만 확인하려 잠깐 pc로 접속하는 정도로 이용시간을 줄이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했다.
굳이 몰라도 되는 지인들의 소식이 복작댔던 머릿속 공간을 비우고, 그 자리를 나에 대한 생각으로 좀더 채우게 되었다. 귀에 들리는 소음만이 소음이 아니라, 그런 소식들이 다 소음이었음을 mute 버튼을 누른 후에야 깨달았다. 인스타는 내가 삭제하면 없어지는 세계, 내가 음소거하면 없어지는 소리,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4. 사람은 기대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관계가 참 허망하다. 여러 번 드는 생각인데 요즘이 특히 더 그렇다. 사람의 아름다움을 믿고 나도 최대한 그렇게 남을 대하려 노력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내 진심이 남에겐 진심이 아닐 수 있으며 진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도 참 많다.
한번은 나름 가깝다고 생각했던 지인과 몇 년 만에 통화를 하게 됐는데, 나는 그 지인의 고민 이야기를 끝까지 성의껏 들어줬다. 그리고 이제는 내 고민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지인은 머뭇거리더니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벽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나랑 만나고 있는데 폰을 자주 확인한다든지, 약속시간을 한참 늦어놓고 사과 한마디 없다든지, 만나서 내 이야기 듣는 데는 건성이고 자기 이야기하기만 바쁘다든지, 무안하게 만든다든지. 여러 이유로 사람에 대한 마음이 깎여내려간다. 정말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지켜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 수 있겠지.
사람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뭔가를 기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어느순간부턴 그렇게 다짐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애초에 본질적으로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부터 가벼웠던 것을 무겁게 대하기로 했다면, 그것은 내가 선택하는 방식이니 그에 따른 대가는 나의 몫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빠르게 끊어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어느 정도는 나에게 있다. 건강한 단호함이 좀 더 필요하다.
사실 인간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삶의 요소였던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피곤해졌다. 휴식기를 가질 때가 온 듯하다.
5. 무책임
요즘 들어 풀숲, 벤치, 난간 같은 곳에 내용물이 반쯤 비워진 일회용컵이 자주 보인다. 양심에 안 찔리나? 볼 때마다 화딱지가 나는 한편, 갑자기 철학적인 생각으로 빠지면서 저 컵이 무엇을 대변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커피를 구매했으면 내용물을 다 먹고 뒷처리하는 책임도 당연히 함께 부여받은 것이니, 아무데나 버려진 컵은 무책임의 상징이다.
수험생인 나로 치면,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날이 그런 모양새 아닐까. 대충 먹고 아무데나 쑤셔박아 놓은 컵처럼. 그런 무책임한 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정말 무서운 거다.
하루라는 게 자고 일어나면 그냥 주어져있으니까 더 쉽게 막 대하고 낭비하게 된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법칙이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이를테면 다음날을 맞이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했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를 들어 그 가격이 1만원이었다면, 우리는 최소한 자신이 느끼기에 1만원에 해당되는 가치만큼은 열심히 살았을 거다. 사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1만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히 살고 싶었던 날이 오늘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가 거저 받는 것들 중에는 무한의 가치를 갖는 것들이 많다. 그 중 제일은 시간일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실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책임감은 갖고 순간순간을 대하기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