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Jul 30. 2021

카드지갑 분실기

3000원 주고 얻은 값비싼 교훈

카드지갑 분실 사건

며칠 전, 카드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늘 귀중품을 잘 챙기는 나였는데, 버스정류장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카드지갑을 길에 떨어뜨렸던 것 같다. 고시반에 도착한 지 정확하게 1시간 후, 폰에 웬 결제알림이 떴다. 누군가가 내 체크카드로 1000원짜리 커피를 3잔이나 사 먹은 것이다. 그때서야 카드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고시반 밖으로 뛰쳐나왔다. 

'자, 여기서 허둥대면 일을 더 그르칠 거야. 그러니까 누군가가 내 카드지갑을 어디선가 주워서, 학교 안 자판기에서 커피를 사 먹었다는 거지? 이럴 땐 경찰 신고부터 하는게 맞겠지?'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 신고를 했다. 정문으로 오겠다는 경찰관의 차분한 목소리에 조금 진정이 되었다. 경찰관님의 지시에 따라 일단 가지고 있는 카드를 모두 정지시켰다. 그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경찰차를 기다렸다.

15분쯤 지났을 때 경찰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상황 설명을 하고, 길가에 엉거주춤 앉아서 진술서를 작성했다.

공권력에 내 상황이 맡겨졌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피해금액도 크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누가 내 카드를 겁도 없이 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진심으로 왜 그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러고 나서 약 3시간 동안 잃어버린 물건들을 복구하는 조치를 취했다. 평소에 자주 쓸 만한 중요한 카드는 전부 카드지갑에 넣어뒀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았다. 민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증명사진부터 다시 찍어야 했으며, 은행에서 신용카드, 체크카드, 보안카드를 모두 재발급받았고, 학교에서 학생증까지 재발급받고 나서야 복구 조치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날씨는 야속하게도 매우 더웠고, 힘듦을 가중시켰다. 주민센터에서 민증 사진 규격이 맞지 않다며 사진을 다시 찍어오라고 했을 땐 울고 싶었다. 하지만 더워도 너무 더웠어서 그런가, 찝찝한 감정들에 젖어있을 겨를조차 없이 사태를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할 일을 마무리하고 쉬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늦은 점심시간 즈음 고시반에 돌아왔다. 아침에 느꼈던 불안과 혼란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 쉴 수 있다는 안정감만이 남았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오후 일정에 임할 수 있었다.

교훈

어릴 때부터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에 무척 민감했다. 심지어 그게 별거 아닌 물건이라 하더라도 일단 잃어버린 것을 안 이상 다시 찾을 때까지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초3땐가 잃어버린 줄넘기를 찾으려고 모든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을 써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학교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깟 줄넘기 하나 새로 사면 될 것을.

지금도 물건을 잃어버리면 순간순간 불안하고 애타곤 한다. 그래도 어릴 때보다는 그 정도가 덜하다. 심란함보다는 "이 물건을 어떻게 찾아야 하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지?"와 같이 해결 프로세스를 빠르게 머릿속에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게 되었다. 물건이야 잃어버리면 찾거나 다시 사면 된다는 의외로 간단한 사실이 체화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물건을 찾고 사는 데 쓰이는 시간적, 물적 비용을 내가 오롯이 감당하면 된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는 그만큼의 민첩함과 책임감이 발동되지 않는 것 같다. 열정, 절제, 평온과 같은 마음의 보물들을 상실했을 때는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기 이전에 깊은 침체에 빠지곤 한다. 카드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을 땐 총알처럼 튀어나가 온 신촌을 돌아다니며 단 몇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마음의 문제는 그렇게 쉽고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해결 의지와 속도 모두 한참 처진다.

귀중품을 되찾기 위한 나의 노력들을 되새겨본다. 단 30분이라도 밖에 있으면 쪄죽을 것 같은 더위에서도 바쁘게 돌아다니며 취한 조치들.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고 오로지 상황을 해결하는 데만 집중했던 몰입감. 그렇게 모든 조치를 끝마쳤을 때 찾아온 평온함. 내 마음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그렇게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와 같이 즉시 내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여담으로, 아직 카드지갑은 못 찾았다. 범인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좋은 교훈 하나 얻었으니 됐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 안정감을 되찾으려는 열망은 무더위를 가뿐히 이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