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지나도, 수능의 향기는 그때 그대로다.
동생을 수능 고사장에 데려다주고 왔다. 아침 6시반에 집을 나섰다. 이렇게 빨리 하루를 시작해보는 건 또 오랜만이다. 졸린 눈을 부비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젯밤엔 잠을 설쳤다. 내가 수능 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동생이 할 긴장을 일부 내가 같이 겪어주는 것 같아서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5년 전 내가 수능을 볼 땐 전날 한두시간 정도밖에 못 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동생은 그래도 다섯 시간은 자고 갔다. 지금쯤 국어 시험을 보고 있겠다.
어제 동생에게 작은 편지를 써 주었다. 수능이라는 게, 입시라는 게 학생들을 점수로 줄세우기에 어찌 보면 참 잔인하지만, 인생은 결코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이러니일 수 있지만, 사실 진짜 그렇다고. 결과로 승부를 보는 세상에서 결과만이 본질로 느껴지겠지만 언제나 돌이켜보면 본질은 과정에 있었다. 사실 이 말은 1차시험을 100일 앞둔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동생에게 쓰는 편지였지만 동시에 내 마음 속 백지에도 나를 향한 동일한 편지를 써 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전, 동생이 물었다. 자기 재수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이렇게 답했다. 언니 봐바. 외무고시 3수하고 있잖아. 재수하면 인생 망하는 거 아니야. 중요한 건 오직 하나 - 과정을 진실하게 밟아나가는 거. 그거 하나밖에 없어.
동생을 데려다주고 나서 마스크를 잠시 벗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수능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온다. 그윽한 낙엽향과 찬바람의 향이 섞여 있다. 이 향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부담'이다. 한 해의 마무리를 예고하며 그동안 살아온 열매를 잔뜩 나열해야만 할 것 같은, 1년치의 무게가 공기 중에 엉겨있는 아주 부담스러운 향기. 그래도 20대 중반쯤 되니 그 부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부담이 없는 나이는 없으며, 지금의 나는 지금의 부담을 있는 그대로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2021년은 우리 자매에게 가장 부담스러웠던 한 해였다. 부담은 절대적인 공부량보다도 고3이라는 타이틀, 고시생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고 규제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를 억누르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틀은 궁극적으로는 내 내면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 동생은 시험장에서 그간 쌓아온 부담을 쏟아붓고 내려놓는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나도 나의 부담을 직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