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서의 공부

하루하루 쌓인 공부경험은 소중한 원동력이 됩니다.

by 도토리

나는 고시생이다. 고시생은 공부가 직업인 사람이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용시간의 대부분을 투입해야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루종일, 매일매일 공부하는 게 즐거우려면 공부 그 자체를 다른 어떤 것보다 좋아하면 된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그렇지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에 진학한 것도, 고시의 길을 망설임없이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하는데, 세상에 대해 아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실패 앞에서 공부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할 때 나를 다시 일으켜주곤 했던 소중한 동기다.



그런데 이 동기를 매일같이 떠올리며 꾸준히 공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공부가 잘되고 못되고는 그날 내 상태에 엄청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원대한 꿈을 가지는 것은 분명 공부에 도움이 되지만, 그날 당장 우울하거나 몸이 안 좋으면 꿈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너무나 사소해보이는 현실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가슴속 이상과 꿈보다 크게 다가올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꿈, 포부, 비전, 이상은 공부의 원동력이 되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루하루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많이 고민하고 부딪혀본 결과, 한 가지 답을 찾았다. 공부를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기계적으로 생각없이 하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차이가 큰 것 같다. 나같은 경우,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생각없이 할 수가 없는 성격이다. 하나하나 마음을 담고 약간이라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공부 경험을 많이 만들고자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정말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해보면, 나는 기본서에 낙서를 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파트가 이해가 안되면 구어체로 "뭐라는 거임? ㅡㅡ" 이라든가 "개어렵네..." 이런 식으로 옆에 적어놓는다. 이렇게 하면 공부라는 활동이 좀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낙서를 남겨놓은 부분이 한번씩 생각나서 한번이라도 더 펼쳐보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 부분이 이해가 되면 다른 색깔 볼펜으로 옆에 "이해됨!!! :D" 이렇게 신난 말투로 적어놓는다. 또 경제학 교과서 등에서 "~ 경우에는 어떨지 독자 여러분들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돼 있으면 옆에다가 "ㅇㅋㅇㅋ" 이렇게 적어두기도 한다. 마치 저자 선생님이랑 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로써 사소하지만 기분좋은 이해의 경험이 하나씩 생기는 것이다.



평소에 스티커를 수집하는데, 공부하다 특히 어렵거나 정감이 안 가는 부분에는 이따금 스티커를 붙여준다. 그러면 한번이라도 눈길이 가게 되고, 내가 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몇 달 전에는 현실의 힘듦을 공부로 잊은 신기한 경험도 했다. 나는 보통 힘든 일이 있으면 공부가 절대 안되는 타입이라, 그날의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한 번 더 복기해본다. 평소에 믿었던 가까운 사람 두 명에게서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던 날이다. 괴로운 걸 넘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당장 그날 저녁에는 국제정치학 기출스터디가 있었다. 거의 열 페이지 분량의 답안을 써 가야 했다. 아무리 마음이 힘들더라도 이 답안은 무조건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스타벅스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스콘을 먹으며 잠시 진정하고,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답안을 썼다. 손목이 나가떨어질 지경까지 썼다. 그렇게 한 문제 답안을 완성했는데, 신기하게 오전까지만 해도 너무 쓰라렸던 마음에 새살이 돋은 기분이었다. 원래의 나였다면 하루종일 힘들어하고 오락거리로 도피했을 텐데, 그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했고, 공부로써 힘듦을 극복한 것이다. 그때 나는 스스로가 참 대견스러웠다. 힘들 때 의외로 공부가 내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해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얼마 전 연말에는 각종 대면 스터디를 통해서 나에게 맞는 공부 방식을 발견하는 경험도 했다. 작년 중순부터 고시반이 다시 열리면서 실원들과 직접 만나서 하는 스터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제성도 부여하고 일상에 활력도 불어넣을 겸 대면스터디를 많이 했다. 작년에는 특히 대면스터디 두 개(하나는 국제정치학, 하나는 미시경제학/국제법)를 병행했다. 여기에 식사와 출퇴첵을 겸하는 생활스터디도 반년간 했다. 이렇게 하니까 일주일의 대부분은 누군가를 만나서 공부하게 되어서 최소한의 활력이 유지되었다. 작년 연말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약 열흘간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활기 넘쳤던 때가 스터디를 하러 갈 때였다. 스터디 직전까지는 아무것도 못하고 책상 앞에 엎드러져 있다가도 스터디할 때는 같이 이야기하며 공부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들이 재미있고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도 단순히 카톡으로 인증하기보단 직접 만나서 뭔가를 같이 하는 스터디, 하다못해 캠을 키고 서로를 보며 하는 스터디를 많이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오늘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가지 경험이 있었다. 요즘 시간 재고 PSAT을 푸는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오늘은 악명이 높은 2021년 입법고시를 풀었다. 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길래 싶어서 한번 풀어보았다. 언어논리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자료해석을 풀고 나니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다. 피셋 풀면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상황판단은 끝까지 풀지도 못했다. 풀다가 두통이 갈수록 심해지자 결국 캠을 끄고 등받이에 기대서 그대로 잠들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뜨니 스터디원 언니가 타이레놀과 차를 올려놓고 갔다. 문제 풀 때는 울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니 마음이 금세 따뜻해졌다. 그리고 회복의 시간을 갖고자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스콘을 맛있게 먹고 학교 한 바퀴 산책했더니 상태가 깨끗이 나아졌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회복의 경험을 선물하니, 내일 문제 푸는 것이 두렵지 않아졌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려운 것도 해 봤으니까 더 쉬운 문제는 얼마든지 잘 풀어낼 수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러나 그 꾸준함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이렇게 하나 둘 쌓아온 공부 경험들인 것 같다. 오늘도 이 글을 다 쓰고 한두시간 정도 헌법 공부를 할 예정인데, 나에게 있어 소중하고 의미있는 경험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내일의 공부도, 이번주 토요일에 볼 모의고사도, 그리고 2월 말에 있을 시험까지도 모두 나에게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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