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여러분의 ○○은 무엇인가요?
하루는 케이팝스타에서 Problem을 부른 것으로 유명한 서예안 님이 불현듯 생각났다. 예안 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평생 노래하고 싶은 서예안"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담백하면서도 짙게 묻어있는, 평범한 제목이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나는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답이 떠오르지만, 왠지 이 글에는 제일 중요한 한 가지만 적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그것이 더욱 확고한 나의 답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나는 죽을 때까지 대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전에 사람에 대해 권태기가 온 것 같다고 글을 썼었다. 그 글을 쓴 지 한 달이 조금 안됐는데, 지금은 권태기의 ㄱ조차 남아있지 않다. 권태기가 진짜로 왔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바쁜 일상 와중에도 누군가와 식사하고 이야기할 틈은 항상 만들어둔다. 오가는 이야기의 풍성함과 더불어, 마음도 식사를 한 듯한 배부름에 만족하는 순간들이 거듭될수록 - 나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새롭게 깨닫는다.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애피타이저 삼고,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식 삼아 강물 같이 이야기를 흘리다보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의미가 더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는 타인과 나누는 대화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더욱 친해지듯이 나하고도 대화하면서 나를 더 알게 된다. 요즘은 되도록 나 자신과 대화를 자주 나누려고 한다. 그렇게 일상의 중심을 세워나간다.
어젯밤 같은 경우 가위에 눌리다가 4시쯤 깼다. 악몽의 내용과 나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또렷하게 생각났고, 다시 잠들면 또 악몽을 꿀까봐 억지로 깨어있으려 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진정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심호흡하면서 나 자신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어제 뭐했지? 요즘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지? 내일은 어떤 일정이 있지? 이렇게 소소한 질문을 던지며 악몽 따위 존재하지 않는 나의 진짜 현실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인식시켰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다시 잠들었고 악몽은 다시 꾸지 않았다.
어릴 때는 가위를 일이주에 한번 꼴로 자주 눌렸는데, 그때마다 폰을 집어들어 친한 친구들 서너명에게 카톡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진정하려면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은 나 혼자로도 충분히 안정을 찾을 수 있으니, 나와 나누는 대화가 제법 익숙해졌다.
참 좋다. 베프가 생긴 기분이다.
대화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해보자면, 내가 하는 공부도 대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정립되어 있는 지식체계, 그리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공부를 통해서 나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는 공부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를 글로 표현하고 현안에 적용함으로써 나만의 화답을 한다. 세상과의 대화를 거듭하며 나의 것이 된 지식을 갖고 사회인이 되고 나면, 내 분야에서 나는 또다시 무수한 대화를 거듭하며 지식을 창출하고 확장하게 될 것이다. 내가 되고자 하는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대화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말과 글로 소통하며 타국과의 관계를 다지고 증진한다.
일상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대부분 대화의 일종이다. 생각을 주고받고 확장하는 모든 행위를 대화라고 본다면, 내가 하는 공부와 취미 활동들은 다 이에 포함된다. 혼자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가능한 한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그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사고를 확장하는 작업이 너무나 즐겁다. 대화의 주제가 깊고 무거울수록 그런 대화가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바꿀 수 있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 할수록 채워지는 느낌을 얻는다.
여러분도 한번쯤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의 문장을 각자 완성해보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던가 떠올려보는 것이다.
나는 평생 대화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대화가 보다 단단하고 알차게 영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