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아이와 선생님
두 개의 자아가 싸우고 화해하는 이야기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참 많다. 예를 들면 공부계획을 다 지키지 못했을 때, 해이해졌을 때, 책임있게 하루를 살지 못했을 때 등. 실망의 순간에서 항상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점이다. 내멋대로 이름을 '아이'와 '선생님'이라고 붙여보았다.
'아이로서의 자아'는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한 자아다. 맛있는 게 땡기면 바로 먹으러 가야 하고, 놀고 싶으면 놀아야 하고, 자고 싶으면 자야 한다. 공부에 충실할 때는 이 자아가 제법 잠잠하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피로해지거나 마음이 힘들어져서 내 일과를 놓게 되는 순간 내 안의 아이가 날뛰기 시작한다. 해야 할 일보다는 당장 느끼는 욕구에 충실하게 되고, 따라서 기존에 세워둔 계획을 지키기 상당히 어려워진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이, 어떨 땐 쉽게 잠잠해지다가도 또 어떨 때는 좀처럼 진정할 기미가 안 보이는 그런 아이다.
'선생님으로서의 자아'는 아이를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자아다. 꿈과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그것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연, 월, 주, 하루 단위의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 계획을 실천하고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고차원적인 만족감을 선물한다. 선생님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욕구들을 들어주려고 하지만, 공부에 집중하는 데 아이가 상당히 방해된다는 점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적절히 타이르고 제어하여 시간을 의미있게 쓰고자 한다.
아이는 자주 괴로워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충족하기 쉬운 욕구 체계를 지녔음에도, 아이가 온전히 만족하는 경우는 잘 없다. 아이의 욕구는 무서운 속도로 리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도 그런 욕구를 무분별하게 방치했다가는 본인이 무너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이는 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자신을 잘 지도하고 통제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통제력이 항상 강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대책없이 떼쓰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자주 지친다. 선생님은 아이를 많이 사랑하지만, 사실은 아이를 수도 없이 미워했다.
선생님은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를 미워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해 봤지만 - 사실 아이 없이는 선생님도 존재할 수 없다. 아이가 가져다주는 단순한 행복감, 만족감은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와 부딪히는 상황이 오면, 아이와 싸우기보다는 잘 화해하기로 매일 매순간 다짐한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고 떼쓰면, 공부하기 싫어하는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공부하기 싫은지 부드럽게 물어본다. 만일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그 두려움이 허구임을 일깨워주며 공부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아이가 지금까지의 일정에 지쳐서 휴식과 전환점이 필요한 것이라면, 공부를 잠시 멈추고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그렇게 아이와 선생님은 끝없는 대화와 타협, 협력을 통해서 온전한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자존감이 가장 낮았을 때는 선생님이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때인 것 같다. 둘은 박터지게 싸우기만 했고 따로 놀기만 했다. 그런데 아이와 선생님이 화해하여 일상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나를 건강하게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자존감은 웬만해서는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내 안의 아이와 선생님이 서로를 사랑하고 협력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둘의 협력 양상은 하루하루 색다르다. 아이도 나고, 선생님도 나지만 - 때로 한발짝 물러서서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이 두 자아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참 재미있다. 그리고 안도감을 느낀다.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있고, 선생님에게는 아이가 있기에 내가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가고 성장할 수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