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글쓰기

열렬하지 않음 / 늑대인간 / 작은 행복들

by 도토리

스터디 6개를 진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글쓰는 횟수가 여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단순히 시간적인 여유가 줄어서라기보다도, 글쓰기를 통해서 해소했던 무언가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전만큼 글쓰기를 갈망하지는 않는다. 급하게 쏟아내야 할 문장들이 생성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의 대화 시간(=글쓰기)을 좀 덜 가져도 되는 또 다른 여유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여름은 내가 글쓰기와 새롭게 친해지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그렇게 친해지고 편해진 글쓰기라는 친구와 간간히 연락 정도만 하는 편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삶이 조금 더 안정되었다는 뜻이기에 나는 지금 상태에 무척 만족한다.



1. 열렬하지 않음



원래 내가 열렬하게 좋아했던 것들에 대하여 일종의 권태기를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람이 있다. 스스로 약속을 주 몇회 이하로 제한해야 할 만큼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고, 누군가에게 선톡 오는 게 일상의 큰 재미였다. 사람에 대해 느끼는 이런 뜨거움이 당연히 계속 불타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당연한 감정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내가 사람을 생각하는 데 필요 이상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경시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이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을 보는 나만의 뚜렷한 기준, 어떻게 보면 일종의 '벽'도 생겼다. 그런 벽을 세우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였는데 참 오묘하고도 당연한 변화다.



최근 들어 이따금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사람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던 것을 보면, 이런 나의 변화가 나조차도 아직은 어색한 듯하다. 하지만 좋다. 여전히 사람을 많이 좋아하지만, 그런 감정을 마음껏 뿜어내고 만끽할 만큼 내 삶이 견고하지 않다. 나 자신을 더 돌보고, 내 생활을 더 단단하게 구축하면서 나중에 다시 사람들을 환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보다 더 안정된 내가 사람들과 다시금 맺어나갈 관계의 새로운 양상이 한편으로는 기대된다.



2. 늑대인간



요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늑대인간'이라는 메타포를 자주 차용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안에는 심히 다른 양 극단이 존재한다. 한없이 우울해하고 요동치며 삶의 모든 좋은 것들을 부정해버리는 '늑대', 그리고 꿈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긍정하고 작은 기쁨의 불씨를 유지해나가는 '인간'. (관점에 따라서는 반대로 전자가 인간이고 후자가 늑대일 수도 있겠다)



영화 등을 보면 늑대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언제 늑대이고 언제 인간인지 잘 알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어느 일방의 모습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두 가지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특별히 괴로워하지 않는다. 환상의 존재인 늑대인간이 사실은 나 개인에게도 내재되어 있음을 생각해본다. 꼭 나를 어느 한 모습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으며, 그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나는 주체적인 개인이기에, 어느 모습으로 있을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안의 두 모습이 번갈아가며 나올 때, 두 모습 다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였고, 나에게 여러 모습이 있음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이런 깨달음은 다른 사람에 대해 좀더 여유롭고 관대해질 수 있는 심적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누구나 인간관계를 맺을 때는 내가 바라보고 규정하는 상대방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 한편으로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심하면 관계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모든 모습이 마땅히 옳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사람에게는 여러 모습이 있음을 내재화하고 나면 관계를 맺는 것이 한결 편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상대방의 모습이 안 맞다고 판단하고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선택하면서도 상대방을 일방적인 어떤 모습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그저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자 나처럼 여러 모습을 가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관계의 변화에 대한 후유증이 크게 남지 않는다.



3. 작은 행복들



행복은 나만의 취향 혹은 취미에서 온다.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의 요소가 아닌데 나에게는 큰 만족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 신비하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작은 요소들을 곱씹어보면 자기이해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 같아 재미있다.



몇 가지 나열해보면

1) 다이어리 정리하기: 모든 여백을 나의 이야기, 계획, 그날의 감상으로 채운다. 여백을 남기면 더 써야 할 말을 자동적으로 구상하게 된다.

2) 스티커 수집하기: 고시반 책상에 스티커만 따로 모아놓는 봉투가 있다. 여기저기서 사 모은 것들, 카페에서 주는 스티커, 출처를 알 수 없는 것들 등 다양하게 담겨있다. 테이프 대용으로 메모지를 고정할 때 쓰거나, 유독 행복하고 뿌듯했던 날의 다이어리 칸에 스마일 스티커를 붙여준다.

3) 폰트: 반듯하고 세련된 폰트를 좋아한다. 길거리 간판의 폰트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휴대폰 폰트를 3500원 주고 샀다. 'GF가는연필고딕체'라는 폰트인데, 35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폰으로 무언가를 할 때 잔잔한 만족감이 더해진 것을 느낀다.

4) 강아지 인형: 고시반 책상 구석에 처박아둔 내 강아지 인형. 가끔 내 베개가 되어준다. 열람실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약간 정신나가있을 때는 인형에게 뭐라뭐라 말을 걸어본 적도 있다. 색깔이 노래서 이름은 '치즈'라고 지어줬다. 삭막한 책장이 조금 더 귀여워졌다.

5) 교재에 낙서하기: 교재로 공부하다가 웃긴 포인트가 나오면 놓치지 않고 근처에 'ㅋㅋㅋㅋㅋ' 따위를 적어놓는다. 나중에 다시 보면 그 부분을 공부하던 나의 모습이 하나의 경험으로서 떠올라서 좋다. 작은 재미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어려운 부분에는 '개어려운데요..?' 등을 적어놓는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볼 때 이해가 되었으면 '해결됨!!!' 이라고 또 신나게 적어놓는다. 이래서 내가 본 책은 나중에 중고로 되팔 수 없다. 누구 보여주기엔 좀 많이 부끄럽다.

6) 고시반 책상 정리하기: 유일한 내 개인 공간이라서 애착이 크다. 나름대로 알뜰살뜰하게 정리해놨다. 매주 월요일마다 책상을 물티슈로 닦고 정리하는데 마음까지 같이 정리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대충 몇 가지 적어봤다. 물론 이보다 많지만 위 여섯 가지는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된 내 취향들이다.

"재미"라는 감정은 꽤나 본능적이다. 내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는 직접 해 봐야만 알 수 있고, 재미 요소가 추가되면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다. 세상엔 재미있는 것보다는 재미없는 게 더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재미는 의외로 일상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꼭 거창한 꿈과 희망만이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이 나를 일으켜세울 수 있고 일상에 애착을 갖게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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