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겸 떨어보는 수다

사람, 도토리, 후련함

by 도토리

마의 목요일이다. 피셋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부터 피곤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다. 딱히 잠오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힘이 나지도 않는 상태. 한때 피곤함마저 자책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피곤에서 벗어나는 점진적인 과정을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문제 그 자체 혹은 해결된 상태 그 자체보다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나에겐 제일 의미있고 재미있다. 그런 의미로다가 글쓰기 창을 열어봤다. 딱히 수다 떨 사람도 없고, 그냥 여기다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누군가는 봐 주겠지 싶어서. 말 나온 김에 난 내 블로그 이웃분들께 참 고맙다. 누가 내 얘기 들어주는거 되게 좋아하고, 나에 대해 궁금해해주는거 정말 사랑하는데... 내 글 꼬박꼬박 읽어주는 분들 덕분에 글쓸 맛이 조금이라도 더 난다. 어쩌다 한번씩 댓글이 달리면 진짜 뛸 듯이 기분좋다.



무슨 수다를 떨지. 얘기하고 싶은 게 참 많은데... 우선, 요즘 그리고 항상 내 가장 큰 화두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난 사람이 참 좋다. 사람을 멀리하고 절제하게 되는 고시생 신분임에도 사람을 위한 마음의 공간은 언제나 충분히 남겨놓고 있다. 그 공간은 나 자신을 위한 공간만큼이나 큰 것 같다. 고시생이면 혼밥의 달인이 되기 마련인데, 사실 난 아직도 혼밥이 약간은 어색하다. 물론 식당에서 부끄럽거나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혼밥하면 보통 폰을 보거나 멍때리면서 밥을 먹는데.. 그게 참 심심하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주식이 되고 차려진 음식은 반찬거리가 된다. 대화를 하고 나면 뭐라도 남는다. 일단 웃음이 남는다. 내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보면 나에 대해 정리된 생각들이 남는다. 그리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배울 점이 남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고 싶어하는 편이다. 극도로 계획적인 성향임에도 누군가가 갑자기 밥먹자고 하는 걸 웬만하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사람이 사랑스럽다. 사람을 향해 부어줄 애정을 언제나 한솥가득 채워놓고 늘 뿌리고 다니는 것 같다. 내가 봐도 나는 좀 별나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이런 사람이었고, 앞으로는 더 이럴 것 같다.



꽤 자주 이런저런 상상을 한다. 내 상상은 역시 주로 사람에 대한 것이다. 훗날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떤 가정을 꾸리게 될지, 남편과는 어떤 관계일지, 자식은 어떻게 키울지... 이런 상상이 난 너무 재미있다. 직장 동료들과는 또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궁금하고. 인간관계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지금과 달리 4-50대 정도 되면 인간관계를 한정적으로 맺게 될 텐데, 그럼 그때 사귈 친구들과는 어떤 식으로 어울릴지. 훗날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게 되어 글친구들을 만들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글을 쓰고 나누게 될지. 즐거운 상상이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상상만큼은 자유롭고 다채롭게 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는 데도 지혜와 기술이 필요하다. 그냥 무조건 좋아하고 무조건 잘해주면 그게 관계를 잘 맺는 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주고 싶은 마음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나는 남에게 쏟고 싶은 에너지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나 자신에게 돌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없다면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면 되고, 하늘에다 대고 소리쳐도 된다. 나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지, 또 스스로를 어떻게 타이를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도 인간관계의 중요한 측면이다. 나랑 친해지다 보니 요새 혼잣말이 늘었다. 혼자 길을 갈 때는 꼭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아무도 없는걸 확인한 후 중얼거리는 게 습관이 됐다. 버즈 끼고 있으면 사람이 있는지 신경도 안 쓴다. 통화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ㅋㅋ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그냥 갑자기 내 닉네임 도토리의 유래를 설명하고 싶어져서 그것도 적어본다. 난 어디서나 도토리다. 중학교 때 네이버 처음 가입할 때 닉네임을 도토리로 설정한 이후부터는 카페든 블로그든 밴드든 도토리로 일관하고 있다. 내가 지었지만 제법 마음에 든다. 처음 지을 당시, 순수 한글 단어이면서 내 특성과 관련된 닉네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가 "내가 키가 작으니까.. 도토리 키 재기? 도토리?" 이러면서 도토리로 짓게 됐다. 또한 도토리는 열매니까, 열심히 살면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고 싶다는 의미도 담았다.



내 본명을 모르고 처음부터 나를 "도토리"로 알던 분들은 도를 빼고 토리님이라고들 많이 부르는데 너무 맘에 든다. 어감이 귀여운 별칭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내 본명도 "도토리"마냥 부르기 쉽고 가벼운 어감의 이름이다. 내가 누구에게나 편안한 어감으로 불린다는 거 참 괜찮다.



마지막으로 "후련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고3 때는 수능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의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서 힘을 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딱히 그런 게 없다. 솔직히 이 시험이 끝나고 취업을 해도 후련하거나 가벼운 마음이 들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큰 산 하나 넘었다는 기쁨이야 있겠지만, 그도 잠시일 뿐, 그때의 나에게는 또다른 과업이 주어질 거고 그 과업을 이행해나가는 일상을 살 것 같다. 아마 70대 노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난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 살 것이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는 때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험이 끝난 이후를 떠올려도 별 감흥이 없다. 그때의 일상과 지금의 일상이 아주 다를 것 같지도 않다. 돌이켜보면 고시생이기 이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고, 오히려 지금 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현재 내 신분과 상관없이 본연의 내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러니까 뭔가 다 이루었다는 그런 후련함은 내 인생에서는 없다. 아마도.



그럼 수다 끝. 제 수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굳밤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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