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수록 마주하기

2021년 입법고시 1차 기출을 분석하며

by 도토리

2주 전에 2021년 입법고시 기출을 풀어보았다. 난이도 조절 대실패로 악명이 높은 시험이었다. 법제직이었나 아무튼 어떤 직렬에서는 1차 합격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풀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서 한번 풀어봤다. 어쨌거나 누군가는 그 시험을 붙었을 테니까.



언어논리까지는 "아 좀 어렵네?^^" 정도였다면, 자료해석 풀 때부터는 출제자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피셋 공부가 머리를 많이 쓰는 공부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두통을 유발하는 문제들은 처음이었다. 점심 먹으려고 일어났는데 걸음이 똑바로 걸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상황판단은 푸는 도중에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 이정도로 머리가 아픈데도 계속 풀면 다음 공부에 너무 지장이 클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멈췄다.



그렇게 2021년 입법고시 문제는 나에게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물론 시험장에서 이 문제들을 직접 푼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너무 어려운 문제들은 리뷰해봤자 소용없다는 말도 들었기에, 리뷰를 포기하고 다른 연도 문제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21년 입시를 다시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누군가는 그 문제를 분명히 풀었을 테니까. 또 피셋 공부에 있어서 리뷰를 문제 푸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리뷰도 하지 않고 넘어간 문제들이 너무 찝찝하게 가슴 한 켠에 남았다. 그래서 약 3-4일에 걸쳐서 21년 입시 문제들을 하나씩 풀고 리뷰했다. 시험장에서는 안 풀 문제들도 전부 풀어보았다.



21년 입시가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모든 문제들을 엄청나게 꼬아놔서라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들이 많아서였다고 생각한다. 법률형 문제를 예로 들면, 5급에서는 법률형이 반 페이지 정도로 나온다면 21 입시에서는 한 문제가 거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고려해야 할 조건의 개수와 복잡도가 확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 정도 길이의 문제는 5급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시험 시간은 5급과 동일하기 때문에 응시자들은 타임어택을 몇 배는 더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우선 실전에서 어려운 문제가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어떤 문제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출제자가 쓰는 장치들을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언어논리 정보확인 유형의 경우, 본문에서 눈에 띄는 특징적인 키워드를 선지에 옮겨놓고 주변 내용만 살짝 그럴 듯하게 바꾸는 것이다. 선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본문과 일대일 매칭하는 식으로 풀면 무조건 낚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전반적인 난이도가 높은 한 세트를 시간 재고 풀면 내가 평소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지면서 안하던 실수를 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 문제 푸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된다.



어렵게 어렵게 21년 입시 분석을 마치고 나니, 1차시험이 아무리 어렵게 나와도 적어도 당황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문제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북돋아주며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90분 동안 집중해서 문제를 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내가 나 스스로를 배려하고 위해줘야한다. 예를 들면 문제 푸는 데 몸상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자세를 바로해야 한다. 나는 책상 앞에 "고개 들어!"라고 써 붙여놨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공부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목이 아픈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또 심리적으로는 문제 푸는 도중에 실수해서 다시 풀게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괜찮다고 독백하며 해결을 모색하는 것도 있다.



피셋의 벽은 나에게는 제법 견고해보인다. 어쨌든 한번도 1차시험을 통과해본 적이 없고, 모의고사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등수가 나온 적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셋을 풀 때는 언제나 조금의 두려움을 머금게 된다. 사실 어떤 것보다도 문제를 마주할 때의 두려움이 가장 큰 벽인 것 같다. 그리고 피셋 공부는 이 두려움을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뭐든 못하면 두렵지만, 잘하면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어진다. 21년 입시를 리뷰하면서 많이 어렵고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너무나 많은 꿀팁을 발굴했고 앞으로 피셋 푸는 것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게 되었다.



피셋에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정확성'과 '신속함'이다. 나에게는 신속함의 벽이 더 높다. 높은 정답률을 기록해 본 적은 많아도, 충분한 양의 문제를 푼 적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과목별로 설정해 둔 목표 개수가 있는데, 그 개수까지 도달하려면 2-4문제는 더 풀어야 한다. 그런데 또 내가 빨리 풀고 싶다고 빨리 풀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답답하기도 하다. 문제를 '잘' 해결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해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최대한 빠르게 해결한다는 의미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현실에서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 한다. 대개 문제는 방치해두면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셋에서 측정하고자 하는 공직자의 자질을 기른다는 측면에서 문제를 빨리 푸는 연습은 큰 의미가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속도를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적용할 것이다.



예전에 나는 피셋 공부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자꾸만 문제를 틀리는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도 싫고, 시간 압박 속에서 많은 문제를 푸는 것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 새해 다짐 중 하나를 "피셋 공부 즐겁게 하기"로 설정했다. 공부하면서 피셋 공부가 즐거울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다. 나는 피셋 공부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피셋은 현실의 축소판이다. 피셋 공부를 하면서 얻은 문제 해결 능력은 실생활에서도 요긴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계획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세우고자 할 때 상황판단에서 최댓값/최솟값을 구하라는 퀴즈 문제를 풀며 쓴 스킬들이 도움되기도 했다. 또 언어논리, 상황판단의 일치부합 문제를 풀면서 얻은 읽기 능력은 논문과목 공부에 도움된다. 물론 빨리 피셋공부를 끝내고 논문과목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어쨌든 이 공부의 의미를 수시로 되새기면서 공부하다 보니 이제야 피셋이 조금은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제 정확히 5주 남았다. 시험장에 가지고 갈 스킬을 연마하는 데 아주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2월 26일 시험장에서 공부한 것들을 후회없이 쏟아붓고 올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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