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고 싶을 때, 문장에 기대어
어지러운 마음은 문장의 형태를 띨 때 비로소 정돈되는 듯합니다.
이상하게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자 글쓰기 창을 켰다. 뭘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도,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문장으로 쏟아놓다 보면은 뭐라도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폰 바탕화면에 디데이를 깔아놨다. 가끔 부쩍 줄어든 숫자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묘하다기보단 불쾌함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숫자는 중립적이고 죄가 없는데, 그 숫자가 나를 압박하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 숫자를 사슬로 만들어 내 목에 두르고 옥죄는 느낌이다. 솔직히 디데이 어플을 지우고 싶다. 하지만 지우면 안될 것 같다. 지우면 지는 것 같다. 회피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받아들여야 할 긴장감과 불안함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고 싶다. 도망가서 편안한 나보단 폭풍우 속에서도 담담한 내 모습을 스스로에게 증명해보이고 싶다.
나는 이 시험 앞에서 한번도 당당해 본 적이 없다. 어느 수험생인들 당당하겠냐마는. 20살, 21살 땐 빨리 고시 준비를 시작하고 싶었다. 10년 넘게 꿈꿔온 외교관이라는 꿈에 실질적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니까. 그런데 막상 고시를 시작하니까, 총체적으로 어려웠다. 지금 사투를 벌이고 있는 피셋도 어렵고, 경제학도 어렵고, 내 본전공이라 그나마 자신 있는 국제정치학도 어렵고, 생소한 법 과목은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보다도 내가 제일 어렵다. 고시생은 시험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이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깊은 과목을 마주해야 하는 것 같다.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무력하고 부족하고 기복이 심한 존재였는지 시험 준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지금은 날마다 그런 나 자신의 민낯을 직면해야 한다. 그래서 때론 이런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럴 방법이 없어서 답답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돌아가야 했다. 좋든 싫든 책상 앞에서 나를 만나고 알아가고 발전시켜 나가야 했다.
무서운 것은 내가 내 부족한 모습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게을러져도 "난 원래 이랬으니까" 따위의 핑계가 허울 좋은 이불이 되어주는 거다. 내 부족한 모습은 없애려고 노력해도 잘 안 없애지더라. 예전에 무기력하게 책상 앞에 엎드려 있던 내 모습이 끔찍하게 싫다. 자기혐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한 발짝만 걸친 채,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들을 머릿속 앨범으로 모아두고 그 모습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있다. 그 모습이 반복되지 않아야만 내가 비로소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25살의 나는 달라야 한다. 24살의 나와는 철저히 선을 긋고 분리되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매일의 공부는 전투 같다.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되는 날들이 분명히 있다. 그럴 때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건강하지 못한 잡념들이 현란하게 들락거린다. 누군가에게 안겨서 울고 싶은 날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안기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내 지지대로 삼는 것이 두렵다. 섣불리 사람에게 기댔다가 상처받은 기억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어느덧 혼자 숨죽여 우는 것에 익숙해졌다. 차라리 이 편이 낫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울게 되어 우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어서 우는 게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이제는 불안이나 긴장을 없애려는 노력은 의미없어 보인다. 내가 로봇이 아닌 이상 시험을 앞둔 입장으로서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없애보려고도 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데 편해지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강요가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찾아오는 불안감을 이제는 반기려고 한다. 그 마음은 곧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고, 시험날 실제로 잘하면 되니까. 남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해 주는 격려와 위로를 나 자신에게 매일 해 주고 싶다. 무조건 잘할 거라는, 근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빈말도 아닌, 남들에게는 그렇게 확신에 가득차서 해 주는 뻔한 멘트를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좀 해 줘야겠다. 나는 피셋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잘하고 앞으로는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 약점에만 집중하지 말고, 강점을 계속 조명해주려고 한다. 결국 그 강점을 이용해서 문제를 푸는 거니까.
더 이상의 복잡한 생각은 그만. 헌법 내용 충실히 보고, 피셋 과목별로 내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데 총력을 다해보자. 충분히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