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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02. 2022

정든 것과의 이별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어요.

큰 결정을 내렸다.

수험생활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길을 가기로 했다.



2019년 1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약 3년간의 수험생활은 참 다채로웠다.

학원 스케줄을 따라가기보다는 스스로 스터디를 구성하여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는 식으로 공부했다.

어느 하나 쉬운 과목이 없어 웃음보다는 눈물로 공부했지만, 그럼에도 소소하게 매일 웃으려 노력했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시험을 준비하는 여러 동지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부분 친해졌고, 고시 준비 여부와 상관없이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공부 외적으로 힘든 일들이 많았다. 그중 몇몇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일들이었다. 그럴 때는 공부량을 줄이고 그저 일상을 영위하는 데 집중했다.

하루하루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매일 의식적으로 애쓰고 힘을 들여야 했다. 나에게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삶"이란 불가능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본디 나는 이 시험에 적성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피셋의 벽을 넘으려 부단히 애썼지만, 결국 넘지 못했다. 벽에 계속 부딪히면서도 초시와 재시 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오랫동안 품은 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서였다.

그 결론은 결국 불합격이었지만, 그 자체가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3년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봤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고시 공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하게 영글었다는 것 - 그게 중요했다.



외시는 나에게 있어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같다.

결혼을 꿈꾸며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사귀었지만, 결국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고단했고, 소모되는 에너지 속에서 남자친구를 향한 마음은 서서히 식어갔다.

지난 토요일 밤, 1차시험 채점 후, "너랑 나는 아니네. 우린 여기까지야. 그간 즐거웠어" 하고 남자친구를 놓아주었다.

내가 놓아준 것도 있지만, 그쪽에서 나를 놓아줬다는 느낌이 정말 강했다.

나를 차갑게 걷어찼다기보다는 "얼른 너랑 더 맞는 길을 가"라고 다독이며 보내준 것 같은 느낌이다.

가족에게 불합격 소식을 전하면서 목놓아 울었다. 불합격이 슬퍼서도, 패배감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힘든 연애 기간 동안 축적된 짐과 상처가 해소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내 꿈은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나라가 속한 국제공동체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

사람과 사람 그리고 집단과 집단을 연결하여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것,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

반드시 외교관이 되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꿈들이다.

그럼에도 외시 준비라는 좁고 힘든 길을 택했던 것은, 높은 확률로 불합격하게 되더라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낮은 확률 때문에 오랜 시간 품은 꿈을 시도조차 안하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외시 준비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이제부터는 위에 나열한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한 다른 직업을 모색하려 한다.

그 과정은 고시 준비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대학 입시에 비유할 때, 고시 준비는 정시에 가깝다면 지금부터 시작할 취업 준비는 수시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 나는 전형적인 수시 준비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전문학습 동아리를 하고 통역 봉사를 하는 등 활동을 끊임없이 했고, 그게 지치지 않고 참 즐거웠다.

취준도 수시 준비와 비슷하게 자소서 쓰기, 자격증, 인턴, 필기공부 등 고시공부에 비해 가벼운 활동을 동시에 여러 개 하게 된다.

나에게는 수험생활보다는 이런 삶이 더 즐겁고 풍요로울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인 성향 등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시 준비하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내 능력과 가능성을 하나씩 발굴해나갈 것이다.

진심으로 기대되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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