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같은 세상에 살지만, 두 개의 같은 세계는 없다.
이 글의 제목을 짓기 위하여 '세상'과 '세계'의 차이를 검색해보았다.
‘세계(世界)’는 범위나 ‘경계(境界)’를 지어 구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세상(世上)’은 ‘세계’보다 추상적, 상위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국립국어원
오늘의 글을 위해서는 세계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세계는 '범위'와 '경계'를 구분짓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람은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누군가의 세계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그 사람의 세계 속 인물들은 선한 가치를 추구한다. 이상과 현실이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그런 세계다.
또 누군가의 세계는 지옥을 방불케 한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악하다. 도덕 규범은 무의미하다. 무언가를 꿈꾼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다.
어떤 사람의 세계는 평범하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빛을 내뿜으며 조화 아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에게 있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대화는 그 사람의 세계 곳곳을 엿보고 탐색하는 과정이다.
상대방이 주로 꺼내는 주제를 통해 상대의 세계가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상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활동을 함께함으로써 서로의 세계에 교집합이 생긴다.
상대와 더욱 깊은 관계로 발전하면 둘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서 만든 세계는 그렇게 아름답고 달콤할 수가 없다.
그 세계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으며, 그 어떤 세계보다도 안락하고 편안하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그렇게 굳건할 거라고 믿었던 세계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서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별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렇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세계에 열심히 노크한다.
상대의 세계에 일단 들어가고 나면 내 세계관을 버리고 상대의 세계관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공감 아닐까? 공감은 이래서 어렵다.)
반대로 상대를 내 세계에 초청하기 위하여 내 삶을 정돈하곤 한다.
내 삶에 들어올 사람들을 위하여 더욱 활기차고 건강한 일상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 삶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내 세계를 궁금해하는 사람의 존재"다.
내가 어떤 가치관과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꿈꾸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 등.
사소한 것이라도 내 세계에 대해 물어봐주고 나아가 함께 탐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희열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 비해 연애 욕구가 큰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단지 외로움을 타서라기보다는 내 세계는 사랑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세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들은 상대의 세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자기 삶 챙기기도 바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다.
여유를 찾고 싶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며 다채로운 세계들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삶의 빈 공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