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한철 참 부지런했던
물가에 버들,
날이 추워지면서 또 가장 겨울다운 풍경,
그 쓸쓸한 풍경에 종사하고 있다.
하고 많은 직업 중에
쓸쓸함을 연출하는 직업이라니,
그러나 그 쓸쓸함이란
스산함의 끝에서 살짝 분분해지는 일이어서
나뭇가지 끝에서
앉지도 앉히지도 못하는 바람을
도맡아 보여주는 일이다
소리 죽여 내는 신음 같은,
부릴 데가 없어 방향도 없이 스쳐 가는 바람
헐벗은 나뭇가지도 움츠린 바람도
다 쓸쓸함 끝에 아려온다
사람의 눈에서 한적해진 심상은
눈 끝에 가서 또 자디잔 눈주름이 되고
스산함을 가려 제풀에 주저앉게끔 다독이는 일을
하염없는 응시로 이루는 것이다
세상, 이 쓸쓸한 풍경이 없었다면
저기 저 자잘한 바람은
어느 앙상한 끝에 가서 서성이겠는가
그러니 나는
바람이 딛고 갈 어깨를 내밀어
저 쓸쓸한 일을 도맡는,
버들가지 끝을 높이 치는 것이다
오늘은 내 눈 끝의 주름도
제 일을 다 한 듯
촉촉해지는 것이다
우묵하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
명치 부근이 우묵하게 패여 있었다.
오래 쓴 벼루의 중앙처럼
온갖 궁리를 갈고
곰곰이 붓의 뜸을 들였을 순간들처럼
아마도 마지막 먹을 갈고 있는 듯
숨을 따라 들썩였다
유언의 구절을 고르고
밭은 호흡마다 검은 먹물
가득 묻히고 있는 듯했다.
명치는 숨의 그릇이지만
마지막 그곳에 담긴 숨은
한 끼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악스레 매달렸던 온갖 회한들이
고이고 있었다.
참 많이도 갈았던 흔적,
닳은 만큼 비워낸 흔적이다
닳아서 얇아진 곳,
얇아져서 깊어진 곳
일생의 일기가 그곳에서 기록되었으며
할 말 못할 말 다 그곳에서
궁리 되었을 것이다
벼루의 가운데처럼
평생 갈고 또 갈은 숨이 바닥나고
모든 치명致命이
직전에 달해 있었다.
등과 뱃가죽이 붙어버린
우묵한 그곳에
숨 가쁘게
마지막 말을 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