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와 비루(鄙陋)에는 어떤 처지가 있나. 온통 오락가락, 또는 머뭇머뭇거린 흔적이 움푹하다. 일필로 휘지하지 못한 주저(躊躇)들로 가득하다.
기껏 짐승의 꼬리나 적시던 저 얕은 허방. 비틀거리는 문자나 숙련시키던 비루한 벼루. 갈았을 뿐 닦지는 않았으니 갈고 닦은 서법 하나 못 배출한 선생 같은, 귀퉁이마저 면목 없게 깨져있다.
그러나 지금도 갈팡질팡 꼬리 하나 찾아오고 쓱쓱 갈면 검은 밤 얕게 고여 나올 단계석(端溪石) 벼루 하나. 자세히 보면 반짝 별이라도 뜰 것 같은, 취록색의 묘안(猫眼)이 눈을 깜박이고 있다.
허공을 날아가던 새, 흰 먹물 휘리릭 던져 바위에 거침없이 그려낸 일필휘지를 우묵한 벼루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