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합격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약대 입시 결과를 확인하려고 인터넷 창을 열었어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했는데, 합격이었어요. 합격 소식을 들으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과 벅찬 행복이 밀려올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들더군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최선을 다해 노력한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그러면서 알게 되었죠.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걸요. 이제는 목표를 세우되,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즐겨요.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새내기 배움터에 참여했어요.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다는 기대감에 들떠서 새터에 갔고, 출석번호순으로 열 명씩 조가 편성되었어요. 이 조는 앞으로 4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을 만나는 첫 시작이기도 했죠. 하지만 입학 후에 우리 조는 다른 조들처럼 단합되지 못했어요. 나이가 많은 언니들도 있었고, 실험 반이 다르게 편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되었거든요.(지금 돌아보니 서로 성향이 달라서 서로 섞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다른 조 친구들은 함께 모여 공부하고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었지만,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마음은 전전긍긍했어요. 다행히 나중에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긴 했지만, 소속감 결핍이 4년 내내 저를 힘들게 했어요.
약대 생활에서 동아리 활동은 꽤 중요해요. 오케스트라, 풍물놀이, 국악, 의료 봉사, 교내 잡지 등 다양한 동아리들이 있는데요. 취미생활과 친목 도모는 물론이고 선배들로부터 시험 자료인 '족보'를 받기 위한 목적도 컸어요. 약대에서 공부해야 하는 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족보 없이 시험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선후배 간 단합이 잘 되는 동아리일수록 양질의 족보가 있어요. 하지만 동아리에서 제공하는 족보가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해요. 저도 족보가 다른 친구들과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약대생활 내내 마음이 어려웠어요.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동아리 홈커밍데이로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형평성의 문제로 동아리 족보제도가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저는 재학 중에 오케스트라 동아리와 기독교 연합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제가 PEET 3기로 입학을 했는데, 1기와 2기에는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온 선배가 없어서 족보를 얻을 수 없었어요. 오케스트라 동아리는 약대 내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활동하는 동아리였지만, 제공되는 족보는 비교적 평이한 수준이었고 고급 정보는 부족했어요. 그래서 늘 '혹시 내가 모르는 정보가 더 있을까?' 하는 불안함을 안고 공부했어요.
공부량은 너무 많고, 족보를 얻기 위해 동아리 활동도 해야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도 만들어야 하고, 선배들과의 친분도 쌓아야 하니 모든 것이 약대생활이 버거웠어요. 특히, 1년 동안 수험생활을 하며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지냈던 저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졌거든요. 약대에 입학하자마자 인간관계의 풀이 너무 넓어져서 그 변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오히려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수험생 시절이 더 편했다고 느껴질 정도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