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질서가 사라진 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진짜 얼굴

by 최준기


이 책, 제목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밀리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가볍게 읽어볼까 싶어 펼쳤다. 그런데 웬걸. 설정이 너무 기묘하고, 전개는 아드레날린을 뿜게 해서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보기에 잘 조직돼 있고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도 오늘처럼 무사하고 평범한 하루가 될 거라 믿는다. 출근하고, 등교하고, 장을 보고, 퇴근하고. 물론 누구에게는 힘든 날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안정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평범한 일상을 순식간에 뒤흔든다. 갑작스러운 '실명'이라는 재난. 그것도 전염성이 있는, 이유조차 모르는 실명. 한 사람이 눈이 멀고, 그와 접촉한 사람들도 줄줄이 눈이 멀어간다. 정부는 이들을 수용소에 가둬버리고, 이후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곳은 금세 무법지대가 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본성을 드러낸다. 질서가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은 얼마나 쉽게 짐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누군가는 악의 얼굴을 벗고 드러내고, 누군가는 오히려 그 속에서 선함을 보여준다. 평범했던 사람들이 괴물이 되고, 한없이 보잘것없어 보였던 누군가는 모두의 희망이 된다.




읽는 내내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음식을 대가로 성적 착취를 요구하는 조폭 같은 자들, 그런 폭력을 끝내 참지 못하고 스스로 칼을 든 의사의 아내. 그녀는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 눈 때문에 가장 큰 짐을 짊어진 존재가 되었다.




그 수용소는 결국 불타버린다. 모두 밖으로 나와보니, 세상은 이미 눈먼 자들로 가득했다. 군인도, 관리도, 시민도, 모두 실명한 채 혼란 속에 방치돼 있다.




그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는 식량을 구하고 사람들을 먹이고 이끈다.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던 그녀가 지쳐갈 무렵, 사람들이 다시 시력을 회복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재난처럼, 회복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나는 읽는 내내 ‘인간은 과연 본성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계속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존재인지도.




『페스트』, 『파리대왕』처럼, 인간의 본질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묻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몇 년째 하지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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