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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속물적인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말하다

by 최준기



너무 좋아하는 책이다. 다섯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그게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이해 안 됐던 문장들이 이제는 조금씩 와닿는다.

나이 들고, 가정 생기고, 철도 좀 드니까.




홀든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상이 역겨웠던 것 같다. 사람들은 다 물질적인 것만 쫓고, 속물적이고,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교장은 겉보기에 부유한 학부모에겐 친절하게 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텐 인사만 건네고 가버린다. 룸메이트 스트라드레이터란 놈은 잘생긴 자기 얼굴만 사랑하는 인간이고, 여자애한텐 사랑 없이 관계만 원한다. 예전 친구 셀리도 결국엔 가십거리나 좋아하고, 홀든에게 실망만 안겨준다.




뉴욕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차가운 것들에만 집착한다. 자기 차가 얼마나 긁혔는지, 휘발유 몇 갤런에 몇 마일을 가는지, 새로 나온 차를 사고 싶은지. 다들 마음속이 너무 차가워 보인다. 차가운 자동차, 차가운 돈, 차가운 위스키잔, 차가운 엘리베이터… 세상 전체가 식어 있는 느낌이다. 홀든은 차라리 말 한 마리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따뜻하니까. 그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내 입장에서 보자면, 홀든의 방식은 확실히 위험하다. 스펜서나 앤톨리니 같은 어른들의 충고가 더 현실적이고 타당하다는 걸 나도 안다. "공부엔 때가 있다", "자기 가능성을 너무 일찍 닫지 마라" 같은 말들. 그런데도 이 책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내가 이미 한참 식어 있는 상태였는데 홀든이 와서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나를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돈, 차, 부동산, 주식 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좋은 기억을 쌓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고전을 읽는다. 잊지 않기 위해서.




호밀밭 같은 데서 어린애들이 뛰어놀고 있는데, 낭떠러지가 바로 옆에 있는 거야. 그때 내가 얼른 달려가서 애들을 붙잡아주는 거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거야. 바보 같긴 하지만 진심이야.
-《호밀밭의 파수꾼》 중-




홀든은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는 못 올라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가 되고 싶었던 건,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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