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파친코 게임 같은 것 아닐까
추천을 받아 읽기 시작한 책, 이민진의 《파친코》.
사실 처음엔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책장을 펼쳤다.
‘파친코? 도박 얘기 아니야?’
제목에서 풍기는 신비로운 느낌에 이끌렸지만,
이 소설이 일제강점기의 한인 이민 이야기라는 건 미처 몰랐다.
1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
비로소 이 제목의 무게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삭은 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고통받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 이민진, 《파친코》
누군가는 전쟁터에 끌려갔다.
누군가는 고문 끝에 죽었다.
누군가는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꽤 괜찮게 살아남았다.
마치 인생이 ‘파친코’라는 게임 같았다.
하나의 열쇠를 쥐고 저마다 문을 열지만,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그 문 너머가 삶인지, 죽음인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전쟁은 최악의 비극이다.
사람을 등 떠민다. 전쟁터로, 타국으로, 감옥으로.
소설 속 인물들이 바랐던 건 그저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하지만 전쟁은 그 소원을 처참하게 무너뜨린다.
“살갗이 갈라지고 벗겨진 발바닥이 마른 피딱지로 덮여 있었다. 왼발 새끼발가락이 검게 변했다…”
– 이민진, 《파친코》
모진 고문을 받고 겨우 살아 돌아온 남편,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어린 자매,
동생의 학비를 위해 환락가에 발을 들이는 소녀.
이 모든 삶은 거대한 이념의 파도에 휩쓸린 희생이었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역사의 장기판에서 고려될 수 없었다.
정치인? 군인? 경찰? 이웃 사람?
누굴 탓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억울함.
그들은 스스로 잘못했다고 자책하며 죽어가거나,
간신히 살아남는다.
“아, 그때 내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그들의 눈물과 상처는
거창한 이념논쟁 앞에서 외면당한다.
전쟁 중에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가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묻는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잠시 보류되어도 괜찮은가?”
1권을 덮으며 느낀 건,
문명사회는 전쟁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2권에서 그들에게 다가올 운명은 무엇일까.
솔직히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야기의 뒷부분이 자꾸 궁금해진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