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들의 아픈 역사
도박장.
한국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도박장 때문에
폭력배들과 난투극을 벌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도박장을 운영한다 하면
왠지 조직폭력배의 이미지가 겹친다.
일본 파친코 업계의 60~90%가
재일조선인들의 손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한국 사람들은 일본까지 건너가
이 위험해 보이는 업계에 뛰어들었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조차 억압은 심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조선인 삶은 어땠을까.
“여기는 돼지하고 조선인만 살 수 있는 곳이야.”
– 이민진, 《파친코》
집도 구할 수 없었다.
돈을 내겠다고 해도 거절당했다.
벽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많이 시키고 돈은 적게 주었다.
눈 돌릴 곳은 결국 ‘음지’뿐.
“자네 아버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파친코 일을 하기로 했겠지.”
– 이민진, 《파친코》
일본인들은 파친코 사업을 탐탁지 않아 했다.
밤에 일해야 하고, 위험하고, 교양 없어 보였기 때문일까.
하지만 조선인에게는 그것마저도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다.
선자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노아와 모자수.
노아는 모범생이었다.
와세다 대학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모자수는 차별과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중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두 아들이 도착한 종착지는 같았다.
‘파친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조선인’이라는 꼬리표는 벗겨지지 않았다.
결국 노아도 파친코장을 떠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는 모자수와 다를 바 없이 자신도 파친코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 어이없었다.”
– 이민진, 《파친코》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은행에서 일했지만,
일본인 상사의 부당한 해고를 겪으며
그 역시 다시 파친코로 돌아온다.
“솔로몬이 외국 은행서 일자리를 잃어서 지 아빠랑 일하고 싶다 칸다고 상상이 돼예?"
– 이민진, 《파친코》
모자수는 파친코로 큰돈을 벌었지만
자식들만큼은 ‘양지’에서 존경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교육만큼은 아낌없이 지원했다.
하지만 교육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회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솔로몬은 조선인이라는 낙인을 벗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일본에서 조선인은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둘 중 하나야. 조선인이 부자라면 어떻게든 파친코장이랑 얽혀 있다고.”
– 이민진, 《파친코》
이민진은 이 소설을 통해
재일조선인(자이니치)들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들의 좌절과 상처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역사가 잊히지 않고,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