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예언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

by 최준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늘 흥미롭다. 이유를 굳이 꼽자면, 종교, 신화, 역사, 이야기 같은 방대한 인류의 서사를 한데 엮는 능력 덕분일 것이다. 이번 작품 꿀벌의 예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평소에 접하기 힘든 이슬람교와 유대교라는 생소한 세계관이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다.


우리가 익숙한 기독교적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인류 문명을 바라보는 다른 프레임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결국 어느 민족이든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세계관이 있는 법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 것’이 당연히 가장 가치 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이 어느새 타문화에 대한 무지나 우월감으로 변질되는 순간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문화사대주의적 시선을 은근히 꼬집고 지나갔다. 중동, 서아시아, 아프리카... 웅대한 문명이 존재할 거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스스로도 모르게 그런 ‘편견’을 품고 살아왔던 것이다.



책의 중심은 이스라엘과 유대교다. 프랑스인 르네는 최면을 통해 자신의 전생과 내생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르네는 30년 후의 미래로 간다. 그곳은 우리가 꿈꾸던 낙원이 아닌, 지옥에 가까운 풍경이다. 기온 40도, 인구 150억, 식량난, 그리고 제3차 세계대전.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꿀벌의 멸종.


식물의 80%를 수분시키는 꿀벌이 사라지자 인류는 인공수분으로 이를 대신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과는 식량난과 전쟁이었다. 미래의 르네는 현재의 르네에게 “꿀벌의 멸종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해답은 전생의 르네, 즉 중세 십자군 기사 ‘살뱅’이 남긴 예언서 꿀벌의 예언 속에 있다.


놀랍게도 그 예언서는 르네가 수호천사로서 살뱅에게 작성을 ‘지시’한 것이었다. 이 부분부터는 진짜 소설다운 설정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살뱅은 템플기사단의 창립 멤버이며, 예언서를 통해 이 단체의 명성과 권력을 크게 키우는 데 일조한다. 르네는 살뱅을 예루살렘 지하의 비밀 성전으로 이끈다. 그곳엔 모세의 지팡이, 십계명의 현판 같은 전설 속 유물들이 잠들어 있고, 이는 템플기사단 창설의 명분이 된다.


르네와 동료들 역시 현재의 예루살렘 지하에 잠입한다. 문제는, 그곳이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 중인 동시에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모두의 ‘성지’라는 점이다. 솔로몬의 성전이 실제로 그 지하에 존재한다면, 유대민족은 압도적인 명분을 얻겠지만, 반대로 다른 종교들 입장에서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민감성과 역사적 긴장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단지 지리적 경계가 아닌, 신앙과 정체성, 전쟁과 희망이 얽혀 있는 곳. 그런 장소가 두 적대적 국가의 ‘국경’이라는 이름 아래 공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베르베르 특유의 시공간 이동은 참신하지만 때론 정신이 없다. 르네의 전생이 살뱅, 알렉상드르의 전생이 가스파르... 이쯤 되면 ‘너무 잘 짜인 우연’이라 믿기 어렵다. 게다가 알렉상드르는 대학 학장인데, 직업도 없는 르네의 말만 믿고 전액 경비로 이스라엘에 동행한다는 설정은,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몰입이 깨지는 부분이었다.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이 현재에 존재하지 않다가, 과거로 가서 그것을 쓰게 한 뒤 현재로 돌아오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도 타임 패러독스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야기를 끌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설정이라는 건 이해되지만, 조금은 억지스러웠다. 아마 처음부터 결말을 만들어놓고 이야기를 역산해 써 내려간 것 같다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와 관점을 접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의미 있었다. 꿀벌이라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발상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종교적, 역사적 맥락은 책장을 쉽게 덮지 못하게 만들었다.


2권까지 읽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너무 복잡하게 얽히는 서사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지금 이 한 권으로 충분히 많은 걸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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