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6

크랜샤워 블루스 어느

by 시애틀타쟌

고객 중 어느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교사로 아내는 소셜워커로 일하면서

조그만 그로서리를 하고 있었다.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빈민가에 자리한 가게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늘 붐볐다.

부부는 번갈아가며 가게에 나왔다.

캐시대 옆에 노트 한 권은 돈 없는 손님들이 자필로 사인한 외상장부였다.

얼음을 납품하면서 보면 돈 받는 것보다 외상장부 쓰는 게 더 많았다.


그래도 부부는 친절한 미소로 손님을 대했고 칭얼거리며

엄마를 쳐다보는 어린 손님에겐 슬그머니 캔디 하나를 손에 쥐어주는 모습이 더없이 고와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난한 엄마는 아이를 혼내면서도 가게 주인이 내미는 온정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의 미소로 연신 목례를 올리더라.

외상값을 가져온 손님은 의기양양 함박웃음을 머금고 자신이 큰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더라.


"너 우유 떨어지면 언제든지 와야 해?" 하면서 갓난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에게 무서운

얼굴로 다짐 또 다짐을 받는다.

혹여 돈이 없어 갓난아기 굶길세라 두 살짜리 아들을 둔 가게 여주인의 모습은

천사가 현현한 것과 진배없더라.

처연한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서며 뒤돌아서 연신 인사를 해대는 아기엄마의 잔영은

아직도 머리 한 곳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담배를 사러 온 할아버지 손님에겐 담배 좀 끊어보라며 껌 한 통을 내미는데 땀에 전

주름진 이마가 환한 웃음으로 더 쪼글거리 더라.

그렇게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한인부부는 얼굴 한 번 찡그림이 없었고 드나드는

손님 또한 실없는 농담을 건네며 주위에 웃음을 펼쳐놓았다.


임페리얼 하이웨이,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신혼살림을 차렸던 곳이다.

내가 얼음을 싣고 다닐 때는 흑인빈민가에서도 악명 높았던 곳이었다.

오죽하면 우체부도 다니길 꺼려한다는 곳이다.

거기에도 어김없이 한인이 운영하는 그로서리가 있었다.

문을 여는 시간이 들쑥날쑥하였다.


일곱 시에 문을 열어야 하는데 시간은 잘 지켜지지 않더라.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선 손님들 엄마품에 안긴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엄마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땡볕에 포위가 된 손님들은

손부채만 연신 부쳐대고, 젊은 사내 손님은 연신 욕을 해대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렇게 줄지어 선 손님들 사이로 사십 중반쯤 된 가게주인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거칠게 손님을 밀치며 문을 열었다.

도둑을 막는다며 한 번에 다섯 명씩 불러들이는 주인의 위세는

일본 총독과 그 궤를 같이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였다.


아기엄마의 사정은 이러했다.

냉장고가 고장 나 우유를 보관하기 어려워 그로서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밤에는 궁여지책으로 얼음을 구입해 보관하지만

아침이 되기 전 다 녹은 어름은 별 도움이 되질 못 했다.

하여 아침 일찍 그로서리로 달려가는데 주인 놈은 제시간에 문도 열지 않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어슬렁거리며 기어 나온다.


그런 가게주인이 좋게 보일리 만무였다.

손님들은 늑대의 눈빛으로 주인을 노려보았다.

과자를 만지작거리는 어린 손님에겐 만지지 말라며 꽥하고 소리를 지르니

가게분위기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잔돈을 직접 손님손에 건네지 않고 카운터 위에 올려놓아 손님이 직접 가져가게 하는 주인의

작태는 같은 한인이라도 얼굴을 들기 민망할 정도였다.

동네에 하나뿐인 그로서리였기에 차 없는 가난한 주민들은

그곳이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주인도 그걸 아는지라 물건값은 다른데 비해 비싸게 팔고

친절은 안드로메다로 보낸 지 오래인 그를 악덕상인이란

표현 말고는 다른 표현이 어렵더라.


그런 와중에 폭동이 일어났다.

임페리얼 하이웨이에 있던 그로서리는 성난 폭도들이 약탈하고 모조리 깨부수고

짓밟아 급기야는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반면에 젊은 부부가 운영하던 그로서리는

동네 주민들이 가게를 겹겹이 에워싸 폭도들의 접근을 막았다.

낮이나 밤이나 주민들이 나와 가게를 지킨 덕분에

폭동이 나기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폭동이 끝난 후 가게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위에 불타 없어진 가게들의 수요까지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는 가게를 확장하였고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가게는 이 가게 외에 더 있어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지가 여실히 증명되었다 하겠다.

지금도 "너 우유 떨어지면 언제든지 와야 해?" 하며 젊은

아기엄마에게 다짐받던 여주인의 모습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지금도 그 고운 마음 그대로 있을 테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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