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5

크렌샤워 블루스

by 시애틀타쟌

엘에이의 아침은 간밤에 벌어진 난투극을 보았는지 벌겋게

상기된 해가 솟아올랐다.

집에서 가까운 스트립몰을 지나다 보니 창문은 깨어지고 방범창살은

뜯겨나가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쇼핑몰 어느 가게는 통째로 찢겨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운동화를 감쌌던 흰색 마분지가 바람에 끌려다녀 마치

눈이 오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매캐한 연기도 가세하여 도시는 전쟁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이 연속이었다.


모두가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상태로 몇 블록을 더 가니 해군

UDT 출신 선배가 그런다

"이 이게 뭐야?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지금은

변호사인 L 또한 말을 못 하였다.

" 아이고 다 털렸네 다 털렸어" 하면서 빨리 집으로 가자며

놀란 명규형이 엉덩이를 들고 손잡이를 잡고 안절부절못하더라.

그렇게

몇 블록을 간신히 돌아서 집으로 오는데 경찰 사이렌소리와 소방차의

경적이 콜라보를 이뤄 조용한 아침도시를 발로 걷어차듯 깨우며 달려갔다.

곳곳에 주 방위군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여차하면 쏘겠다는 모습으로 서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가 본모습이 티브이에서 본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걸 알게 된 것이다.


모두가 넋을 잃고 있을 때 난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삶았다.

태백선배가 가주마켓에서 사 온 김치의 벌건 국물이 핏물처럼 다가와 입맛이 달아났다.

그와 중에도 명규형은 풀어져 익어버린 계란을 국자로 연신 모아 자기 라면그릇에 소복하게

쌓아놓더라.


설왕설래 이 사태가 언제까지 갈 것이며 우린 어떡해야 하나 침을

튀기는데 가방끈 길고 미국생활 선임인 L이그런다 아무래도

이 사태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으니 라면과 쌀을 사 두고 깡통음식도

마련하자며 대비책을 꺼내놓는다.

태백선배가 그러면 자기가 일하는 가게로 가서

스파게티면을 가져오마 하고 L과 난 물과 생필품을 사 오는 것으로 대책회의가 끝났다.

훗날 "미국의 흑인 그들은 누구인가"를 쓴 장태한교수는


미국에 흑인이 들어온 역사를 촘촘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막연하게 알았던 흑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우리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그들의 삶은

즉흥적이며 울뚝 성질을 가지고 있고 뒤끝이 없는 건 어린아이와 같다.


흔히들 그런다 앞에선 생글생글 웃으며 세상 그렇게 친절할 수없다는

백인들은 뒤통수를 갈기는데 선수라면, 죽일 듯 사납게 달려드는 흑인들은 뒤돌아 서면 언제 그랬냐 하고

벙글거리며 웃는다고.

민족성이 그렇다 낙천적이며 조그만 일에도 깔깔대며 웃는 그들은 점잔을 빼고 음험함이 눈동자뒤에 가득한 백인들과는 기름과 물 같은 애초에 어울리기 어려운 부류들이었으리라.

미국의 양당정치는 진보와 보수로 첨예하게 갈리는데 진보인

민주당은 성서에 나오는 성선설에 보수인 공화당은 성악설에 기반한

정강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공화당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함과 악함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거다.

반면에 민주당은 누구든지 태어날 때는 선하게 태어났는데 주변

환경에 따라 선함과 악함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성선설의 예로는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악한모습을 한 점이라도 찾아낼 수 있냐며 떠든다. 반면 성악설을 주장하는 공화당은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 폭력과 파괴본능이 나타나며 에로 든 것이 놀이터에서 모래로 집을 짓는 놀이를 하다가도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놀던 자리를 다 헤집어 놓고 간다고 한다.


다수의 흑인들이 민주당에 동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엔 에덴동산 같다던 아프리카 대륙에서 강제로 끌려온

원망과 한탄이, 뿌리 깊은 피해의식으로 남아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하겠다.


우리의 이민선배들은 강제는 아니더라도 반강제로 끌려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멕시코에서 헤네캔이라 불리는 선인장을 자르는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우리에겐 애니깽이라고 더 알려졌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보듬고 쓰다듬어어야 할 두 민족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목하고 질시하며 서로를 무시하는 관계로 비틀어졌다.


그리고 4.29라는 폭동을 해산하게 된 거였으리라.

난 폭동의 중심에서 똑똑히 보았다.

보듬고 등 두드렸던 한국사람들 가게는 온전하였고, 무시하고

깔보던 가게들은 찢기고 부서지고 불에 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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