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7

크렌샤워 블루스 5

by 시애틀타쟌


먹을 것 아끼고 찬물로 머리 감아 잠을 쫓아내며

겨우겨우 모은 돈으로 구멍가게를 차렸다.

매일 새벽을 찢고 일터로 달려갔다.

별들의 배웅과 마중을 받아가며 집으로 들어가는 고단한 생활

그렇게 억척스럽게 모은 땀과 눈물과 설움으로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물건이나 가져가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상당수의 점포가 약탈에 이은 방화로 마치 봉수대의 봉화연기처럼

긴 꼬리를 달고 검은 연처럼 솟아올랐다.

기가 막힌 날벼락에 한인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TV에선 집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니 어쩔 것인가?

보다 못한 몇몇 한인들이 자경단을 구성했다는 소리가


라디오에서 중계하듯 울려 퍼졌다.

당시 가수 이장희가 라디오 코리아 방송국 사장이었는데

엘에이 폭동 당시 한인들에게는 복음과도 같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또 정보도 교환하였다.

그러던 중 방송국에 걸려온 전화 한 통

“ 저기요 여기 어디 어딘데요

저희 가게에 지금 폭도들이 들어와 약탈하고 난리 났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래요? 어디라고요 주소 다시 한번 알려주세요?"

방송이 나가자 무장한 자경단은 알려준 곳으로 출동하였고,

도착하여 보니 가게는 굳게 닫혀있고 약탈은커녕 조용했다.


알고 보니 가게가 궁금한데 나가볼 엄두가 나질 않으니

가볼 수는 없고 자경단이 생겼다니 그들을 통해 알고 싶어

꼼수를 쓴 것이었다.

한국사람들 머리 좋은 것이 이렇게도 발휘되는구나


착잡하고 허탈한 마음이 맥이 풀려 널브러졌으리라.

그러던 중 슬픈 소식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자경단 대원하나가 폭도를 저지하다 총격전 끝에 사망하였다는 거였다.

어머니 아버지가 가게를 어떻게 가꾸는 걸 아는 이민 2세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었을게다.

하여 너나없이 젊은이들이 자경단에 합류하였고

그중 대원하나가 희생이 된 거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례 행렬

그날 나는 올림픽과 버몬트 코너 순두부집 이층에서 지켜보았더랬다.

끝을 알 수없던 그 행렬은 두고두고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특이했던 건 장례에 참여했던 조문객들의 차량이었다.

벤츠, 비엠더블유, 볼보, 렉서스, 캐딜락 등등

고급차들이 줄을 지어 이어졌다.

한국사람들이 일궈낸 성과이기도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흑인커뮤니티와 중남미에서 올라온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눈엔 곱게 보일리 만무였다.

돈은 자기 동네에서 벌고 집은 학군 좋은 고급동네에서 살고

자기들은 탈탈거리는 고물 차를 타고 매연을 폴폴 풍기며 다니는데

코리언 저것들은 좋은 집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시기와 질투가 오죽했으랴.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4.29 폭동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휴화산처럼 도시 곳곳에 엎드려있다.

언제 터져서 시뻘건 마그마를 토해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크랜샤워 식구들은 낡은 권총 한 자루와 달랑 2개뿐인 총알에

아랑곳없이 이른 아침에 도시를 유린한 자취들을 살펴보려

나의 고물 차에 몸을 실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