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8

얼음장수 양사장

by 시애틀타쟌

무너지고 불타버린 한인들의 가게들로 인해

주문은 하루에 고작 몇십 건이었다.

허공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던 양사장이

"에이 베트남이나 갈까"


그러면서 얼음장사를 접겠단다.

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게 되었다.

그러더니 네가 한번 해볼 테냐 하고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남아있던 어카운트는 이십여 곳 남짓인데 자동차 개스비나 나오려나 할 정도였다.


얼음공장에서 얼음 받아서 가게에 배달해 주는 단순한 일

대부분 한인들이 주 고객이라 언어소통도 별 문제없고 하여 마음이 혹했다.

문제는 배달하는 깡통밴인데 그것은 한 달에 조금씩 갚으면 된다니 조건은 좋았다.

계약서도 없이 구두로 인수인계를 마치고 그는 베트남으로 떠났다.


미국에 와서 비록 얼음을 팔지만 내 장사가 아닌가.

난 차부터 세차하고 명함부터 주문했다.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박힌 흰 바탕에 파란색 글씨가 선명한 명함을 들고

세일즈에 나섰다.


우선은 보이는 곳곳 그로서리에 들려 얼음 진열대를 보고 같은 브랜드가 아니면

명함을 주고 현재 받는 얼음 가격을 물었다.

나보다 저렴하게 받으면 지체 없이 나왔고 나보다 높으면 내가 줄 수 있는가 격을 제시했다.

그렇게 발로 뛰어서 한집 두 집 어카운트를 늘려갔다.


반년쯤 지났을 때 100 여집을 늘려 130 여집을 육박하게 이르렀다.

큰돈은 아니었으나 어지간한 직장생활보다 나은 수입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내 장사라 시간이 자유로와 좋았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맨 처음 얼음을 받고 바쁠 땐 하루에 두 번씩 받았다.


부지런함으로 따진다면 세계 1등은 한인들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고객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기는 것이 아니었다.

가게에 가면 허리를 90도로 접어 인사하는 것은 기본이며

물건을 정리할 땐 옆에서 도와주고


가게 문 앞에 쓰레기가 있으면 치워주었다.

바쁠 땐 손버릇 고약한 손님들 감시도 해주었다. 가게주인과 친밀감이 형성되고

나중엔 자연스레 거래처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기 거래처를 바꾸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어 연줄연줄로 고객을 늘려나갔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양사장이 얼음공장에 나타났다.


씩 웃으며 잘돼냐고 물어 그간의 일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리고 며칠뒤 양사장이 그런다 이제 자기가 얼음장사를 다시 하겠다고

그러니 전과같이 나는 직원으로 들어오란다.

난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자기가 도로 하겠단다.


계약서도 없이 구두로 인수인계했으니 도로 가져간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난 불법체류자 신세가 아닌가.

옴치고 뛸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었다.

반면 양사장은 초토화된 폭동후유증에 살짝 비켜있다가 어부지리로 회복해 놓은


비즈니스를 털도 안 뽑고 먹게 된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약 오르고 화나는 일이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코가 빠져 벌집 같은 숙소로 들어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저녁이 되어 부산하게 움직이던 내가 보이지 않으니 쌩리가 문을 두드렸다.


거실로 나가니 해군 방선배 그리고 명규형이 캔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며 무슨 일이 있냐며 근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늘일을 말하였더니 하나같이 분기탱천하여 그럴 수는 없다며

양사장을 향한 거친 욕설이 총알처럼 쏟아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