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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4.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

시애틀에 가다  

 바늘이라도 떨어지면 천둥소리가 날 듯한 침묵이 집안의 공기를 꼭꼭 묶어놓았더랬다. 

홋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을 끊은 것은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큰 매형.

 

"미국에도 김치는 있겠지?" 


가늘게 떨리던 아버지의 수저 잡은 손이 딱 멈추었고,

나훈아를 닮은 체첸병사의 사나운 눈빛이 되어 고개 숙인 나의 정수리에 박혔다.

하다 하다 이제 김치도 없는 나라로 도망치듯 떠나는 막내아들이 얼마나 미우셨을까.

마흔다섯에 낳은 아들이 목포도 부산도 아닌 미국이란 델 간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허여멀겋게 생긴 코쟁이의 나라를 간다니..."


 육이오 전쟁 후 책임을 맡아 동네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했던 밀가루를 보낸 나라가 

'미국이다'라는 정보가 다인 아버지로서는 

'그래도 거기가 부자 나라니까 배는 곯지 않겠지'라는 안심이 슬그머니 들어왔지만 

불안감은 떨쳐 내지 못하셨으리라.


 기저귀 차고 기우뚱기우뚱 걸음마를 시작한 쌍둥이 손주 놈들과

아까부터 비에 젖은 새끼 새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른 주먹만 한 얼굴의 며느리와

저팔계 같은 덩치에 고개 숙이고 밥 먹는 아들이,

억장의 한 귀퉁이를 무너뜨리는데, 마음 같아서는 아들의 뺨을 보기 좋게 이쪽저쪽 후려치고 싶으셨으리라. 


 장정도 넘어뜨릴 팔월 무더위에 차려진 아침 밥상.

애호박을 가늘게 채 썰어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어 밥솥 안에서 쪄낸 달걀찜에, 

호박잎으로 은색 비늘을 벗겨낸 갈치가 칼칼한 고춧가루를 뒤집어쓰고 누워있고, 

바글바글 거품을 일으키며 끓고 있는 우렁된장찌개에, 

약이 바짝 오른 어른 중지만 한 풋고추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노려보고 있더랬다. 


시어머니와 겸상한 새색시의 수저질처럼 조심이 밥알을 타고 넘어와 

목에 걸린 것 같은 그 부자연스러움이 얼마나 힘들던지,

콧등에 솟아오른 땀방울이 식어 선뜩선뜩 했다.


말없이 된장찌개를 아들 앞으로 밀어놓고 허공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그 처연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밥이 반도 더 남았건만 아버지는 기어이 수저를 물리고 일어나셨다. 

그 틈을 노렸다는 듯 우렁된장찌개를 자기 앞으로 당겨놓는 큰 매형 머리 위에 

'끄응'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미움과 노기가 천둥 번개처럼 쏟아졌다.

마당 한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댓돌 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시는데,

포를 쏘고 난 뒤에 남은 연기처럼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울음 범벅이 된 막냇동생은 책가방이 한쪽 어깨에 걸쳐진 채로 위태롭게 

뛰어가고, 바로 아래 여동생은 밥그릇 부여잡고 쌍둥이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 분주했다. 

닭 모이를 평소보다 더 멀리 던지시며 닭을 부르는 어머니의 마른 목소리가 자꾸만 갈라지더라지...


 우렁된장찌개를 독차지했던 큰 매형은 만족감에 금이빨이 번쩍번쩍 빛을 내었고,

기름 먹은 막대걸레로 연신 택시를 쓰다듬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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