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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5.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2

공항의 이별

1990년 8월 27일.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사업한다고 까불고 노조 한다고 깝죽대다가

영등포 아동복가게는 후루룩 물 말아먹고

다니던 상호신용금고는 똥 볼 차듯 차버리고, 마흔다섯에 낳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거지가 되어 머나먼 아메리카로 떠난 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유난히 더웠던 그 해 팔월, 사람의 살갗이 닿으면 진저리가 처진다는 계절.

그런 폭염을 무릅쓰고 기어이 공항까지 가신다는 아버지의 고집은 예사롭지 않았고 그 누구도 막질 못했다.

 

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젤 수염,

그에 어울리는 파나마 중절모,

백설 같은 모시로 지은 여름옷,

송승헌도 고개 숙일 꿈틀거리는 송충이 눈썹,

호랑이도 뒷걸음칠 형형한 눈빛,

미켈란젤로가 만든 조각상을 방불케 하는 대리석 같은 콧날은

온화한 입술과 어우러져 배우 신성일의 정강이를 걷어차도 좋을 만큼 미남의 표상이었다.

더군다나 뭇여성들의 꽃밭을 허리케인이 휩쓸고 갈 정도의 화술과 미소는 아버지의 장점이자 결점이었다.

 

마흔다섯에 낳은 아들에게

열 살 넘어까지 팔베개를 내어주고,

밤톨처럼 깎은 상고머리를 보면서 미소가 끊임이 없으셨고,

이리 보고 조리 보아도 예쁘고 듬직했을 아들.

그런 아들을 배웅하는 늙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땀에 젖는다.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로 김포공항 청사 바닥을 내려 찍으며, 

앞발 쳐든 곰의 몸짓으로 헤어지는 고통을 허연 이같이 드러내셨다.

다시는 못 볼 아들을 눈에 넣었는지 아버지의

눈동자는 벌겋게 부어올랐다.

굳게 다문 입술에선 신음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수염은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후 하고 몸속의 불을 쏟아 내었다.

이놈아 이놈아” 메인 목에선 다음말을 잇지 못하고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아들을 데리고 갈 비행기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아버지.

비행기에 빨려 들어가는 아들 뒷모습에 아버지의 애는 이미 단장이 되었으리라.

 

일 년이 채 못 되어 아버지는 그리움의 손을 잡고 먼 여행길에 오르셨다.

검버섯이 물감처럼 번지던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없고 

굳은살 없던 매끈한 아버지의 손도 만져볼 수 없다.

담배와 땀이 뒤섞인 아버지 냄새를 이제 더 이상 맡을 수 없다.

 

부를 때마다 비가 내리는 문주란이 부른 '공항의 이별'을 오늘도 불러본다.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 못 하고 헤어지는 당신을

붙잡아도 소용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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