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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6.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3

편지

 고등학생이던 막내 여동생은 어느 틈에 넣어 놨는지 

가방 속에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탈탈 털어먹고 어깨가 축 늘어져 고향집으로 오던 날도 눈을 맞추지 않았던 동생이었다.

멋지게 성공해서 집안의 등불이 되어주길 바랐던 오빠가 등불은커녕 홀라당 털어먹고 

 말아먹는데 도사가 되었으니 이를 어쩌랴.


 " 지금쯤 오빠는 비행기 안에 있겠지"로 시작되는 동생의 편지는

녹두알 크기의 글씨로 앞장 뒷장을 빼곡히 채워 일곱 장에 이르렀다.

열네 장 분량에 이르는 편지는 눈물 콧물 홀딱 빼는데 후춧가루를 뒤집어쓴듯하였다.

 심장 이곳저곳을 쿡쿡 찌르고 다녔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책이란 책은 닥치는 대로 섭렵하였다.

글 짓는 재주 또한 남달라서 초등학교 6학년에

소년 한국일보에서 주관한 자연보호를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이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종로에 있는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시상식을 하였는데

학교에선 경사라고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이 참석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충청도 시골학교에서 일어난,  제법 씨알이 굵은 사건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서울에 있는 작은형을 위시해서 총 출동하였다.

가난이 뭔지 시상식 후 주인공과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은 

크라운맥주 회사에 다니던 작은형이 도가니탕을 대접하고 

나머지 식구들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읽어가면 갈수록  눈물이 흐르는 데 두 칸 건너 흑인 둘이 힐끔거리고

옆자리의 백인 아주머니는 자기 때문에 우나 싶어 안절부절이다.

스튜어디스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영어로 뭐 줄까요? 하는 거 같은데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코카콜라를 받아 든 옆자리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날리고

난 손가락으로 콜라를  가리켜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유치원 원아에게 사탕이라도 쥐어주어 뿌듯한지 스튜어디스는

맛있게 먹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더라.

 

비행기는 제주도 신혼여행 갈 때 타보고 두 번째인데

미국 비행기라 그런지  버터와 연한 말똥이 뒤섞인 듯 한 냄새가 진동했다.

포틀랜드 오레건에서 내려 볼티모어 메릴랜드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델타 에어라인에서의 기나긴 비행에 난 두려움과 만감이 교차하여 농악대의 상모를 빙빙 돌린 것 같아

한숨도 못 자고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고 내렸다.


이민가방을 끌고 입국심사대에 서니 염라대왕 앞에 서면 이럴까?

초조하여 침이 점점 말라 낙엽을 씹은 듯 버석거렸다.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덮인 입국 심사관은 입은 웃는데 눈은 독수리처럼 빛났다.

 

뭐라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말을 할 수가 있나, 황소처럼 눈만 끔벅이는데

심사관도 난감한지 멀뚱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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