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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7.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

천사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내 옆으로 오더니 한국사람이냐고 물어왔고,

미국 공항에서 듣는 반가운 한국말 나는 목청이 높이 초등학생처럼 네 하고 외쳤다. 

입국 심사관에게 유창한 영어로 몇 마디 하니 입국심사관의 표정이 밝아졌고, 


이윽고 통역관이 된 그는 친절이 입국심사를 도와주었다.

미국에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 

미국엔 누가 사느냐?

뭘 가지고 왔느냐? 


조금 전 밝아진 표정과는 사뭇 다른 심사관은 죽을죄를 지은 죄인 다루는 형사가 되었다.

죠지 워싱턴대학의 F-1 비자로 들어온 내가 영어를 못하니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어들이지 않는데, 가방을 가리키며 뭐라 했고,

통역관이 된 그는 길게 설명을 이어갔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가방을 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양복과 와이셔츠 처갓집에 가지고 갈 미역, 김, 멸치, 등이 알몸으로 튀어나왔고

멸치 비린내에 얼굴을 찡그리던 심사관은 

돈은 얼마를 가져왔느냐를 끝으로 취조를 마치는데, 


우물쭈물 쭈뼛거리자 통역관이 나를 쳐다보고 답을 원했고, 

나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공항에서 환전한 칠십 불을 얘기하자 그도 순간 당황했는지 

다시 물어보더니 영어로 짧게 심사관에게 말해 주었다. 

미국 간다고 형제들이 찔러준 돈과 송별하면서 친구들이 건네준 돈, 친척들이 준 돈은 


혼자 남아 쌍둥이 둘을 키울 일이, 캄캄한 밤길을 걸어갈 일이라, 

아내에게 다 주고 그래도 지폐 몇 장은 필요하겠지 생각하고 바꾼 달러가 칠십 불이었다.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는데 등줄기에서 흘렀던 땀이 식어 서늘했다. 

그제야 나를 도와준 천사를 볼 수 있었고,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하자 손사래를 치며 

인자한 미소로 꽁꽁 얼었던 긴장을 봄눈처럼 녹여주었다.

복이 많은 아낙은 엎어지든 자빠지든 가지밭이라고

천사의 최종 목적지가 워싱턴이라 같은 비행기로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보우하셔도 이럴까? 

나는 만세를 부르고 그는 목동이 되어 나를 인도했다.

좌석이 달랐는데 어느 틈에 내 옆자리에 앉은 그는 천사 중 천사였고,

대학 교수인 그는 한국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단다. 


곤경에 처한 나를 발견하고 도움을 준 거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교수라면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한다. 

스튜어디스가 와서 뭘 먹겠니? 물어와도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척척 말해주었고,

나는 산 같은 아버지에 매달린 어린 소년이 되었다. 


미국에 들어온 이유를 통역하면서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가족관계를 물어왔고,

나는 이실직고하듯 소상히 답을 올렸다.

머뭇머뭇하던 그가 조금 전 심사관의 마지막 질문을 해왔다.

정말 칠십 불만 가지고 왔냐고 그랬다고 답하니, 


놀란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사실 칠십 불이란 금액을 말할 수 없어 대충 얼버무렸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유학 오는 사람이 칠십 불을 가지고 왔다니 납득이 어려워, 

임기응변으로 대답을 했단다. 


이런 고마움이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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