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내 옆으로 오더니 한국사람이냐고 물어왔고,
미국 공항에서 듣는 반가운 한국말 나는 목청이 높이 초등학생처럼 네 하고 외쳤다.
입국 심사관에게 유창한 영어로 몇 마디 하니 입국심사관의 표정이 밝아졌고,
이윽고 통역관이 된 그는 친절이 입국심사를 도와주었다.
미국에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
미국엔 누가 사느냐?
뭘 가지고 왔느냐?
조금 전 밝아진 표정과는 사뭇 다른 심사관은 죽을죄를 지은 죄인 다루는 형사가 되었다.
죠지 워싱턴대학의 F-1 비자로 들어온 내가 영어를 못하니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어들이지 않는데, 가방을 가리키며 뭐라 했고,
통역관이 된 그는 길게 설명을 이어갔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가방을 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양복과 와이셔츠 처갓집에 가지고 갈 미역, 김, 멸치, 등이 알몸으로 튀어나왔고
멸치 비린내에 얼굴을 찡그리던 심사관은
돈은 얼마를 가져왔느냐를 끝으로 취조를 마치는데,
우물쭈물 쭈뼛거리자 통역관이 나를 쳐다보고 답을 원했고,
나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공항에서 환전한 칠십 불을 얘기하자 그도 순간 당황했는지
다시 물어보더니 영어로 짧게 심사관에게 말해 주었다.
미국 간다고 형제들이 찔러준 돈과 송별하면서 친구들이 건네준 돈, 친척들이 준 돈은
혼자 남아 쌍둥이 둘을 키울 일이, 캄캄한 밤길을 걸어갈 일이라,
아내에게 다 주고 그래도 지폐 몇 장은 필요하겠지 생각하고 바꾼 달러가 칠십 불이었다.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는데 등줄기에서 흘렀던 땀이 식어 서늘했다.
그제야 나를 도와준 천사를 볼 수 있었고,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하자 손사래를 치며
인자한 미소로 꽁꽁 얼었던 긴장을 봄눈처럼 녹여주었다.
복이 많은 아낙은 엎어지든 자빠지든 가지밭이라고
천사의 최종 목적지가 워싱턴이라 같은 비행기로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보우하셔도 이럴까?
나는 만세를 부르고 그는 목동이 되어 나를 인도했다.
좌석이 달랐는데 어느 틈에 내 옆자리에 앉은 그는 천사 중 천사였고,
대학 교수인 그는 한국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단다.
곤경에 처한 나를 발견하고 도움을 준 거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교수라면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한다.
스튜어디스가 와서 뭘 먹겠니? 물어와도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척척 말해주었고,
나는 산 같은 아버지에 매달린 어린 소년이 되었다.
미국에 들어온 이유를 통역하면서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가족관계를 물어왔고,
나는 이실직고하듯 소상히 답을 올렸다.
머뭇머뭇하던 그가 조금 전 심사관의 마지막 질문을 해왔다.
정말 칠십 불만 가지고 왔냐고 그랬다고 답하니,
놀란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사실 칠십 불이란 금액을 말할 수 없어 대충 얼버무렸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유학 오는 사람이 칠십 불을 가지고 왔다니 납득이 어려워,
임기응변으로 대답을 했단다.
이런 고마움이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