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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8.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5

볼티모어(Baltimore)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집이 버지니아에 있다며 잘 지내라며 경쾌하게 걸어갔다.

나는 허리를 숙일 수 있는 데까지 숙여 오래오래 고마움을 표했다.

미국에서 처음 만난 천사는 그렇게 나의 뇌리에 오래오래 남았다.


이민자들에겐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공항에서 처음으로 픽업하는 사람의 직업을 갖게 된다고.

가령 픽업 나온 사람이 페인트공이면 페인트를,

청소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청소를 식당을 하는 사람이면 식당을 한다는 말이다.


아내는 언니 하나 오빠 하나 동생 하나가 있는데,

늦게 결혼한 언니는 오래 전에 신청한 가족 초청이 허가되어 미국에 갔고,

미국에서 결혼하여 살고 있었다.

즉 손위 동서가 나를 마중 나왔던 것이다.


당시에 동서는 볼티모어 다운타운에서 그로서리와 캐리 아웃을 운영하였는데,

돈통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미국사람들이 타는 차라 그런지 뷰익 왜건은 역마차처럼 크고 튼튼하였다.

볼티모어 워싱턴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양옆으로 푸른 잔디가 주단처럼 깔린 시원한 도로가 눈에 꽉찼다.

씽씽 달려서 마침내 처가에 도착했다.


딸과 손주들 손잡고 들어올 줄 만 알았던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빚쟁이가 왔나 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돼지 같은 사위를 맞아주었다.

투베드룸 아파트엔 장인어른 장모님 시집 안 간 처제.

그리고 구십 넘은 처 할머님이 사셨는데,


장인어른은 거실에서 주무시고 방 하나는 장모님과 처제가 사용하고,

나머지 방 하나는 할머니가 사용하셨다.

정작 내가 들어갈 곳이 없는 거라 쭈뼛쭈뼛 어쩔 줄을 모르는데,

사전에 논의가 있었는지 할머니와 룸메이트로 결정 난 것을 통보해 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로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만 했다.

가게일이 바쁘다며 동서는 아파트를 나서고,

볼티모어 다운타운에 있는 라파엣 마켓 핫도그 가게에서 일하는 처제는 퇴근 전이고,


어중간한 시간에 밥을 먹으란다.

미리 차려 놓았는지 식탁 위엔 밀가루를 묻혀 쪄낸 꽈리고추를 위시해서,

무생채와 노란 계란물을 뒤집어쓴 스팸이 잘게 썬 파를 고명으로 멋을 내어

줄 맞춰 가지런히 누워있고 영롱한 기름 몇방울이 떠있는 잘게 찢어진 쇠고기 장조림과 같이 있었다.

구운 갈치 두 토막이 작은 접시에 담겨 호박전 옆에 놓여있고,

보암직하게 썰어진 김치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국에도 김치가 있구나 생각이 들자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그 비싼 소불고기가 양파도 없이 맨살로만 볶아져 나오고,


하얀 쌀밥에 소를 여러 마리 잡았는지 소고기 미역국이 나왔다.

많이 먹으라는 장모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자기 몰려온 시장끼가

닥치는 대로 반찬들을 입안에 몰아넣었다.

잘 먹어주는 이쁨보다 거지 삼촌처럼 게걸대며 먹는 사위가 얼마나 미우셨을까?

가뜩이나 가냘픈 작은딸, 제비 새끼같이 짹짹거리는 쌍둥이 외손주가

옆에서 같이 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눈가에 맺힌 이슬을 쓸어내리는 장모님의 옆모습이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호숫가에 내려앉는 두루미를 닮아 

마음이 시려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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