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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8.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6

동거

 평안북도 의주군 고관면 중고동 208번지.

첫날밤은 고단해서 몰랐는데 이튿날부터 오밤중에 

밤새들도 잠든다는 새벽 한두 시쯤

어김없이 들려오는 웅얼거리는 소리에  놀란 잠이 줄행랑을 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처 할머님 때문이었다.

머리는 풀어헤치고 앉아서 뭐라 뭐라 읊조리는 거였다.

처음엔 얼마나 놀랐는지 "할머니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세요?" 물었다. 

군데군데 빠진 이에 아랑곳없이 히 하고 웃으시니,

영락없는 전설의 고향 납량 특집이었다. 주연으로 출연하셔도 전혀 손색이 없으시겠더라.

아무리 손주 사위가 예뻐도 그렇지 장가가서 애가 둘인 시커먼 놈하고

룸메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반대 피켓을 들어 올려야 했다. 


처할머니는 몹쓸 알츠하이머에 발목이 잡혀 아들은 물론 손녀도 못 알아보셨다.

휴일도 없이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처음엔 몰랐는데 궁금해서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보니,


"평안북도 의주군 고관면 중고동 208번지" 처 할머님의 고향 주소였다.

아직도 그 주소를 잊지 못하고 있으니 실향의 아픔이 오죽하랴.

밀양이 본이시라고 하셨고 박, 응자, 명자를 쓰셨다.

맹자왈 공자왈로 평생을 선비건달로 사셨던 아내의 할아버지는 안산을 본으로 두신 김, 정자,호자를 쓰셨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셨는데 그중 막내아들이 총명탕을 장복했는지

서울대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하는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도미하여 목사 안수를 받았다. 볼티모어에서 의사 교회로 소문난 곳에서


목회하다 말년에 GD, KS, CS  목사등과 어울려 할렐루야를 외치다가

진흙탕에 미끄러지고 자빠져서 아끼던 참이슬 같은 믿음을 쏟아버렸다.


그런 아들의 뒷바라지는 물론 손주 새끼들 셋을 숨이 차오르도록 키웠다.

그런 할머니를 당나귀 부리듯 부려먹고 서울대 나오고 연대 나온 아들과 며느리는

학벌에 걸맞게 가방 하나를 꾸려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사는 형님 형수에게

6기 통 볼보 자동차에 실어 짐 부리듯 내려놓고 갔다.


많이 배워서 미적분을 덧셈 뺄셈처럼 한다고,

돈이 많아 밥상에 일본산 와규를 올려놓는다고,

도끼 같은 권력이 있다 하여도 삼강오륜이 닳아 쓸모없어진 짚신처럼 되면 안 될 터이다.

그걸 처삼촌은 교과서처럼 보여 주더라지 워킹하는 모델처럼  도도하게 말이다.

그래서 처삼촌 벌초는 대강대강 듬성듬성한다고 하나 보다.

습관이 되어 무뎌질 때도 되었는데,


할머님의 전설의 고향 촬영은 매일 밤 이루어졌고, 

새벽 한 시에 일어나야 하는 나는 매일 악몽을 꾸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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