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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8.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7

벼룩시장

 장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먹어대니

슬슬 눈치가 보였다.

학교는 비자받기 위한 수단이었지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고,

따로 생각한 학교는 있었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며칠 뒤 동서가 오더니 어디 좀 가자고 한다.

양복으로 갈아입고 멋을 내는데  그 모습을 보던 동서가 헛웃음을 짓더라.

그냥 편안한 복장으로 입으라고 한다. 편안한 복장으로.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상호신용금고를 다녀서 양복만 입었고,


그것도 기성복은 맞질 않아  철마다 다른 맞춤양복이

이민가방에 하나 가득인데 편안한 옷이 있을 턱이 있나.

할 수없이 양복바지에 와이셔츠차림으로 따라간 곳이

헌 옷이며 골동품 나부랭이를 파는 곳이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벼룩시장.

입구에 매달아 놓은 쇠종이 떨렁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들어서니,

곰팡이 냄샌지 옅은 하수구 냄샌지 에어컨 찬바람과 함께 밀려와

익숙지 않은 냄새에 코가 실룩거렸다.


뚱뚱한 백인 아주머니가 머리에 선물포장에 쓰임 직한 노란색 넓은 끈으로  

머리를 묶고 빛바랜 파란색 바탕에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것처럼 반겨주었다.


동서는 큰 옷이 있을 만한 곳을 가리키며 골라 보라고 하였다.

어리둥절 몸 둘 곳을 몰라 허둥대는데,

친절하게 중고옷을 골라준다. 

한국에선 그렇게 찾기 어렵던 큼지막한 옷들이 많이도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나 입어 봤던 반바지를 골라 주는 동서.

낡아서 물이 쏙 빠진 청바지 몇 개 티셔츠 몇 개를 골라 카운터에 갔더니,

동서는 턱으로 돈 내라고 지시한다.

내가 달러를 알 수 있나 지갑에서 숫자가 제일 높게 그려진 20불짜리를 내미니,


10불짜리 한 장과 5불짜리 한 장 그리고 동전 몇 닢을  내손에 올려주더라.

가게문을 나서는데 내가 신고 있던 구두를 보더니 동서가 나를 이끌고 다시 가게로 들어가서

운동화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사이즈가 몇이냐고 묻는다.

270 미리라고 하자 미국 문수로 10.5를 들고 와서 신어 보란다.


볼이 너무 작아 꼭 끼어서 낑낑대자,

지켜보던 동서는 매대에서 11짜리를 골라 이걸 신어보라고 주더라.

내 평생 신발을 중고로 사 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렇게 무너졌다.

 지난번  동서가 백바지에 백구두를 신고 신혼여행으로 한국에 왔을 때,


미국 촌놈 왔다고 깔깔대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내 몰골이, 내 앞날이 별빛도 없는 캄캄한 길이란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아동복 가게가 쫄딱 미끄러지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하나 있던 아파트마저 풋콩 구워 먹듯 홀랑 구워 먹어

지나가던 거지가 형님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처지란 것이

이미 미국에 파다한 소문으로 일렁였다.

하여 골칫덩어리인 나를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였는데 결론은 공짜밥은 먹일 수 없으니.

노동이라도 시키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 마침 아는 사람이 

생선가게를 하는데 거기로 보내기로 하였단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생선가게에서 근육을 팔아 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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