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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08.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8

지느러미 1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닭을 삶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구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여름이란 놈은 뜨거운 열기와 합세하여 목을 조여 숨이 컥컥 막혀왔다.

미국에서의 첫 직장에 첫 출근 하는 날.

벼룩시장에서 산 파란색 물감이 빠져 허옇게 된 청바지에


죄수들 유니폼 같은 가로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수감되는 모습으로 직장에 도착했다.

오십은 족히 되었을 생선가게 주인은 포마드를 얼마나 발랐는지

머리칼이 젓가락 굵기로 뭉쳐져 올백으로 넘겨진 모습으로

나를 위아래로 가로 세로로 샅샅이 보더라지. 


추노꾼에 붙잡혀온 노비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데,

따라오라며 비린내 오지게 풍기는 창고로 데려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것도 생략한 버르장머리가 괘씸했지만 어쩌랴. 


노동을 팔러 온 주제에 입만 삐죽거리는데,

검은색 장화를 주며 신으라고 한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벼룩시장에서 산 운동화와 바꿔 신고 비린내 범벅인 창고에

보물같이 소중한 중고 운동화 둘 곳을 찾는데 아무 데나 놓고 얼른 나오라고 꽥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나마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여 물기 없는 높은 곳에 신줏단지 모시듯

올려놓고 치렁치렁한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나오니,

얼음 옮기는 외발 카트에 담긴 잘게 부서진 얼음을 매대에 깔란다.

삽날이 넓은 눈 치우는 삽으로 얼음을 퍼서 평평히 고르게 펴는 작업이 끝나자 생선을 가져와 진열하란다.

종류대로 크기별로 진열하는데 기름독에서 건져 올린 생쥐를 닮은 주인은

화살 같은 눈빛을 나의 굼뜬 몸에 연신 쏘아대고 있더라.

손님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지목한 생선을 가져와 저울에 달고


비늘을 긁고 머리를 치고 배를 갈라 내장을 뽑아내는 생선 백정이 되어

이리 튀고 저리 튄 비늘이 이마에 눈썹에 콧등에 붙고 

검붉은 생선 피는 파란색 비닐 앞치마에 튀어 흘러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콩 볶듯이 통통거리며 정신을 빼놓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으라고 한다.

그제야 건너 건너 옷가게 벽에 걸린 시계가 두시를 넘겼더라.

허기가 등가죽에 붙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데,

장모님이 해 주시는 한식에 미국 온 걸 실감을 못한 것을 알아챘는지,


기름종이에 싸여 온 것은 다름 아닌 햄버거.

양초를 녹여서 발랐는지 버듯 거리는 촉감에 겉표면은 물이 흘러내리고,

스트로가 꼽혀있는 펩시콜라에 넓적넓적 썰어서 튀긴 

조조라는 감자튀김 한 봉지가 점심으로 놓여있었다.


허겁지겁 한입 베어 물으니 고소한 버터기름으로 익혀진 소고기 패티에

양상추와 토마토 밑에 깔린 생양파가 코를 후려치는데,

분홍색 소스가 이내 얼얼함을 매만져 주었다.

얼음 섞인 콜라를 한 모금 빨아올리니 밑에서 대기하던 트림이


방귀 뀌듯 급하게 올라오고,

당근색으로 튀겨진 조조라는 감자튀김은

소금을 얼마나 뿌렸는지 튀긴 놈 욕을 욕을 해대며 다 먹어치웠다.

점심 먹고 기지개도 못 켰는데 생쥐가 형님 할 주인은 


나의 무거운 엉덩이를 기중기가 된 눈으로 연신 들어 올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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