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애틀타쟌 Sep 10. 2024

지느러미 2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9

급하게 먹었는지 속이 메슥거렸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멈추랴.

생쥐를 닮은 주인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며 찍찍거렸다.

왜 제때에 얼음을 골고루 피질 않느냐?


겉이 마른 생선을 뒤집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서 시뻘건 눈알을 연신 뒤집었다.

아니 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걸 척척 한단 말인가?

가뜩이나 긴장하여 허둥대느라 뚱뚱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데


코앞에서 찍찍거리니,

똬리를 틀고 있던 부아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던 찰나.

따끔하고 파고드는 이름도 생소한 생선의 지느러미가

둘째 손가락 끝을 파고들었다.


어이크 손가락을 감싸 쥐니 이내 부황 침을 빼낸 자리에서 

솟아나듯 영롱한 피 한 방울이 튕겨져 나왔다.

조심하면 할수록 생선 지느러미는 요놈 잘 만났다 하는 것처럼 쿡쿡 찔러대었다.

생쥐 주인의 눈치에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손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얼음 천지 생선가게에서 나는 콩죽 같은 땀을 뽑아내야 했다.

오후 들어 손님들은 어찌나 몰려오던지 백인들은 거의 없고,

번질거리는 검은 피부에 웃을 때 드러나는 분홍빛 잇몸에 하얀 치아는 

얼마나 생경하던지.


처음 보는 레게머리에 곱슬머리 가발을 뒤집어쓴 모습에

달라는 건지 내 놓으라는지 모를 와글거리는 영어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숙달된 직원들은 걸리적거리는 초짜를 이리 치고 저리 치고.

나는 영락없이 뱅글뱅글 도는 팽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 생선 매대를 망연히 보고 있는데,

생쥐의 언성이 높아졌다 마무리하라고

팔다 남은 생선은 솜이불 덮듯 얼음으로 두껍게 채워 냉장고에 집어넣고

피범벅이 된 도마를 치웠다. 하루 종일 날린 생선 대가리가 몇 개인 줄 아니?


하는 표정으로 허연 배를 드러내 놓고 히죽이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생선 칼을 치우고,

쏴아 총 쏘듯 물청소를 끝냈다.

비닐 앞치마를 입었어도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생선 비늘이


가슴에도 배에도 달라붙어있었다.

툭툭 털어도 안 떨어지는 비닐을 손으로 하나하나 떼어내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직원들도 주인도 다 떠나고 마켓 앞에 서성이며 동서를 기다리는데,


주차를 하고 느릿느릿 걸어와 능글맞은 눈으로 나를 보더라.

차에 오르니 뱀이라도 본 듯 움찔 몸을 도사리더니

머리에 비늘이 붙었다며 떼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움켜쥐더라.


아파트에 도착하니 장모님이 미리 저녁밥상을 차려놨는데,

하루 종일 노동에 빠진 단백질을 보충해야 될 듯싶었는지,

맨살로 볶은 소불고기에 앙증맞은 양념간장이 올라간 

두부 부침이 추가 찬으로 올라왔더라.


밥을 먹고 자리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생선 지느러미에 찔린 손가락이

욱신거리며 쑤셔왔다.

손가락에는 셈세함을 다루기에 신경이 모여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욱신거리고 아리고 뜨끈 거리고 따갑고….


통증이란 강도 떼가 몰려와 지근거리는데 잠을 못 자겠더라.

고단한 몸뚱이는 자라 하는데 손가락 통증은 연신 잠을 쫓아내더라.

그렇게 생선 지느러미에 찔려 잠도 못 자는 내가 너무 미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