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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1.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0

생태찌개

자다 깨다 깨다 자다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몽롱한 상태로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손끝에 찬물이 닿자 끓는 물에 덴 것 같은 통증이 뒷목을 타고

정수리까지 빠르게 달려갔다.


따귀를 맞은 불쾌한 느낌의 정신이 번쩍하였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얼굴에 물을 바르고 나오는데,

 벗어놓은 빨래 바구니에서 생선 비린내가 쫓아오더라.

오랜만에 한 노동이라 그래서일까?  입안은 깔깔한데


밥에 조청을 넣었는가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한 공기 더 달라고 해서

두 공기를 씹지도 않고 삼켰다.

살자고 먹는 건지 먹자고 사는 건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

연한 하수구 냄새가 배인 옷을 좌로 우로 고개를 돌리며,


킁킁거리다가 누가 볼까 봐 얼른 고개를 들었다.

일찍 나왔는지 포마드를 머리에 바른 생선가게 생쥐 주인이 나를 화살이 과녁 보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왜 나왔어? 하는 표정으로.

오늘도 인사는 생선 꼬리 치듯 잘라버리고.


머뭇거리고 서있는데 어제 보지 못한 낯선 사람이 

생쥐한테 넙죽 인사를 하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나는 어제부로 해고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뽑은 거였다.

일하러 온 사람을 세워놓고 망나니가 된 주인은 칼날에 물도 뿌리지 않고


단칼에 베어버렸다.  생긴 것처럼 말이다.

졸지에 갈 곳을 잃은 나는 집에 갈 생각이 어둠처럼 밀려와 정신이 휘청이는데, 

세모눈에 영락없는 쥐눈을 가진 주인이 동서한테 온 전화를 바꿔주더라.

마켓으로 가고 있으니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미리 알았다는 듯 동서는 나를 데리고 아파트로 가는 게 아닌 

다른 마켓으로 데리고 가더라.

당시에 볼티모어 다운타운엔 렉싱턴 마켓, 라피어마켓 ,

벨에어 마켓이 있었는데 생선가게가 있던 곳이 렉싱턴 마켓이었다.


동서가 데려간 곳은 채소가게가 있는 벨에어 마켓이었다. 

주인은 서른예닐곱 살은 되어 보이는데 싹싹한 인사를 건네왔다.

남자가 눈웃음을 치는데, 여자를 여럿 자빠뜨리 고도 남게 생겼더라.

전부터 그런 말이 있지. 못생긴 남자의 눈웃음을 경계하라.


쳐다보지도 관심도 얻지 못할 것 같은 눈웃음치는 남자들은 어느 틈에

다가와 등 뒤의 브래지어 호크를 풀고 있다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될 것이고 이미 눈웃음치는 남편이 옆에 있다면,

튼튼한 밧줄로 발모가지를 단단히 묶어놔야 할 게다.


주인은 날렵하게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며,

고향이 어디냐? 가족은 어떻게 되냐? 여긴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 왔다.

호구 조산지 심문을 하는 건지 모를 억양으로 지지배배 새처럼 지저귀고 말이다.

대강대강 답을 주었더니 자기 고향은 여수란다 여기서 오래오래 함께 일하자고 한다.


그러마 하고 뒤돌아 서는데 할머니 한 분이 뒷문에서 나오며

점심을 먹으랜다 배도 안 고픈데 밥을? 하고 캐시 레지스터 옆에 있는 시계를 보니,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왔는지 빨간 꽃잎이 그려진 하얀 양은 밥상에 차려진,

김치에 왜 총각이란 단어를 붙였는지 충분히 이유를 알만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총각김치가


하얀 사기 보시기에 담겨있고, 무말랭이가 고운 고춧가루로 화장을 하였는지

다소곳이 놓여있고, 붉은 창난젓에 잘게 썰은  풋고추 몇 조각이  

조개젓 위에 올라타고, 노란 계란찜에 화룡점정 같은 생태찌개가 하얀 쌀밥을 동무하고 놓여있었다.

촘촘한 그물을 덮은 것 같은 생태 껍질 속에 새색시 속살 같은 하얀 살이


부끄러운 듯 살짝 보이는데, 없었던 허기가 벌떡 일어나 숟가락에 힘을 불끈 쥐어주었다.

한 술 입에 넣자마자 난리가 났다. 내 평생 맛보지도 맛볼 수도 없는

생태찌개를 이렇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맛을 볼 줄이야.

국물은 하얗게 끓여낸 대구지리같이 맑았다. 살짝 뿌린  고춧가루가


연한 감색으로 물들인 치마처럼 에뻤다. 어슷어슷 썬 대파 몇 조각이 

속에 품었던 진액으로 비린맛을 잡았는지 달고 시원했다.

보드랍고 차들차들한 두부의 촉감은 또 어찌나 좋던지

내 생애 그런 맛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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