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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2. 2024

이너하버 1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1

 유행가 가사처럼 손가락 걸고 변치 말자고 댕기 풀듯 오래오래 일하자고 맹세를 한 지 몇 주 만에 채소가게를 그만두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나에게 생태찌개는 이 세상 최고였던 채소가게, 지금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채소가게는 생태찌개만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날마다 찬이 바뀌는데 눈만 호강하는 것이 아닌 입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현란한 전라도 음식은 가히 하늘과 땅을 젓가락 두 개로 

뒤집는 재주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좀 짜서 그렇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먹는 게 다는 아니더라.



사람과 사람이 뒤엉켜 살아가는데 참고 참아도 어려운 것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이기죽거리고 비아냥대고 모멸감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입이 황홀한 직장도 주인의 됨됨이가 어질지 못하면

여러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이더라.

여자 손님이 왔는데 예썰 땡큐 썰 하였는지,

주인이 와서 그런다, 저 손님이 남자냐고?

아니 여자라고 하였더니 그럼 왜 썰을 하느냐고 한다.


남자는 썰 여자한테는 맴이라고 해야 되는데,

한창 바쁠 땐 나도 몰래 뒤섞여 나오니 어쩌랴.

그걸 물고 늘어지는데 한두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놀리고 깐족대니 장이 뒤집어지겠더라.


하여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모기만 한 소리로 얼버무리니,

이번엔 목소리가 그게 뭐냐고 투덜댄다. 

눈웃음 살살 치면서 이웃 가게 주인이며 종업원에게

고해바치듯 약을 올리니 받아들이는 나는 죽을 맛이라.


낙숫물에 주춧돌도 파인다고 가뜩이나 주눅 들어 기를 못 펴는 나는

손님이 오면 부들부들 떨리고 주인의 눈치를 먼저 봐야 하는,

똥 마려워 낑낑대는 강아지 같은 강박에 시달려야 했다.

영어를 못해 알아들을 수 없는 나의 약점을 핀셋으로 끄집어내듯 하여



영어로 자기들끼리 키들키들 웃는데,

그 모멸이란 놈은 나의 숨통을 조여와 땀이 나고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영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때부터 잉태되어 자라고 있었을 게다.

입은 점점 안 떨어지고 눈치는 총알처럼 빨라 어디에 박힐지를 훤히 알고.


미리미리 대처를 하였더니 영어는 자꾸만 멀어지고,

동안거에 들어앉아 묵언 수행하는 스님이 되었다.

입안은 바짝바짝 마르고 숨은 가빠지고 주인 눈치 보랴.

손님이 원하는 거 눈치로 때려잡으랴 숨이 턱까치 차올랐다.


차라리 노동판에서 모래 짐을 나르면 날랐지 더는 못하겠더라.

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재벌집에 시집을 간 탤런트가 시집 모임에 참석하면

유학파 동서들은 영어로 지들끼리 시시덕거리고 깔깔대고,


옆에 있는 사람은 그게 욕을 하는 건지 흉을 보는 건지 알 수 없어

피가 마르고 애가 타서 연기가 날 지경인데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으리.

둘째 며느리가 미국으로 시집왔을 때 제일 먼저 행한 조치가

넷이 만나면 무조건 한국말을 하라는 거였다.


큰며느리는 일찌감치 유학을 와서 영어에 문제없고,

쌍둥이 아들놈들은 한국말이 어색한데 혹여 영어가 편하다고

자기들끼리 영어로 말하면 당황할 둘째 며느리 생각에

엄하게 내린 명령이었다.


지금도 그 조치는 효력을 발휘 중인데,

이제는 많이 적응된 둘째 며느리가 오히려 영어를 쓰려고 하더라.

그렇게 생태찌개 아른거리는 채소가게를 그만두고,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별이 다섯 개인 오성급 호텔말이다.

볼티모어 이너하버에 위치한 하얏트 호텔이 그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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