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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3. 2024

이너하버 2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2

 세 번째 직장은 5성급 호텔이다.

호텔 하면 생각나는 것이 깨끗하고 새하얀 침대 시트가 눈처럼 깔려 있고,

왠지 고급스러운 곳에서 자신의 품격을 높여주는 곳으로 생각하리라.

잠잘 생각에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그건 촌뜨기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호텔은 잠만 재우는 서비스 업종이 아니다.

비싼 밥을 파는 데가 호텔이다.

침대 빌려주고 푼돈 받으면 호텔은 유지하기 힘들 터.

그래서 비싼 밥을 팔기 위해 겉치장을 화려하게 하더라.


대개 호텔은 크고 높다.

또한 명품으로 휘감아 품격 흉내 내며 서있고,

로비도 화려하게 의리의리 하게 꾸며서 번쩍번쩍 또 번쩍.

파리가 낙상이라도 하면 고관절이 부러질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리고 밥은 참새 모이만큼 주고 밥값은 은행강도같이 털어가는 게 호텔이다.

그래서 호텔 가서 밥도 안 먹고  이불 덮고 운동만 땀 뻘뻘 흘리며 혹은 땀 뻘뻘 빼며,

야호를 외치다 호텔문을 나가면, 호텔 관계자는 그런 고객의 뒤통수에 눈 따발총을 쏜다.

이렇게 꽃보다 화려하고 구찌백 같은 귀티가 흐르는 곳이 나의 직장이었다.


이것이 아메리칸드림을 초고속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된 나는 어깨에 힘을 쏟아붓고 C자형 목을 일자형 목으로

빳빳이 세우고, 남들은 지쳐서 퇴근할 때 나는 힘차게 출근하고,

남들은 아침부터 목 빼고 일할 시간에 나는  당당히 퇴근하는 


계란 노른자 같은 직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흔히들 꿈의 직장 신이 나에게 선물로 주신 직장.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철밥통 직장 등등으로 묘사를 한다.

그런 훌륭한 직장에 취직을 한 나는 신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에 감사를 드렸고,


호텔을 더 밝고 환하게 깨끗하게 하는 것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같이 여겨졌다.

저녁 일곱 시에 출근 아침 일곱 시에 퇴근하는 

근로의 등불로 밤을 밝히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내가 맡은 임무는 이층에 있는 레스토랑, 바닥을 비로 쓸고 물걸레 청소를 하고, 


화장실 변기며 거울이며 바닥을 쓸고 닦고, 밤 12시에 점심을 먹고,

호텔 맨 꼭대기층에 있는 바를 청소하고, 내려와 로비를 쓸고 닦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그리고 밀고 당기는 후문의 유리문을 청소하고,

엘리베이터 안의 황금색 표면을 파라오 문양처럼 반짝반짝 광을 내고,


혹여 지문자국이 있으면 스테인리스 광택제로 번질거리게 닦고,

카펫을 다이아몬드 무늬로 베큠을 하고 다 끝나면 점검을 받는데

얼마나 타이트하게 스케줄을 잡아놨는지 물 마실 틈도 없었다.

온몸이 땀으로 멱을 감는 노동은 채찍이 없을 뿐 장발장의 노역장 같았다.


그렇게 거대한 호텔을 청소하는 나는 매일밤 핏줄이 지렁이처럼 튀어나오고,

심줄을 비틀어서 근육을 늘렸다 줄였다를 반복하여

호텔의 내장을 깨끗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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