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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7. 2024

잠 귀신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6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영화는 다 아시리라. 

학교 이름은 노틀댐, 가톨릭 계열의 대학교다.

학생비자가 살아있어야 아내도 데려오고 쌍둥이도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울면서 겨자 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하는

주경야독 아니 주독야경은 죽을 맛이었다.

 

아침 일곱 시에 퇴근하면 서둘러 간밤의 먼지와 땀으로 범벅된 몸을 

샤워로 벗겨내고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공부를 하고 두세 시쯤 집에 오면 곯아떨어져 다섯 시 반에 일어났다.

밥 먹고 호텔에 출근하여 청소하고 다음날 퇴근하는 생활이었다. 

그야말로 해군 UDT 훈련 중 지옥훈련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처음엔 정신력으로 버텼으나 차츰차츰 모자라는 잠은 틈만 나면 

어디서든 눈을 붙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버스에서 졸고 수업시간에 졸고 심지어는 밥 먹으면서도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살아오면서 밤을 지새운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심지어 친구들과 그 재미있는 고스톱을 쳐도 난 자야 했다.

하물며 밤을 새우며 노동을 하고 서너 시간의 수면이 다인 나는

가뭄에 타들어가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 같았다.

선데이는 하나님을 만나서 떼를 써야 기도의 제목들이 이루어진다니 어쩌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처제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

처삼촌이 운영하는 교회로 향했다.

하나님은 찬양을 좋아하신대나 어쩐대나 세워놓고 떼창을 하였다.

졸 수가 있나 잘 수가  있나  꼼짝없이 찬양을 따라 하면서 난 이놈의 찬양이 멈추기를 

 

주님께 기도했다 아주 간절히 절절하게 말이다.

굿판 같은 찬양이 끝나면 설교가 이어지는데 옳커니 이제 맘 놓고 자겠구나 고개를 숙이는데

기쁨도 잠시, 작은 체구의 처삼촌 목사는 목청이 얼마나 큰지 잠 좀 자려하면

천둥, 벼락 치듯 소리를 지르니  어린아이 경기 하듯 깜짝깜짝 놀랐다. 

그래서 지금도 꽥꽥거리는 설교는 많이 사양한다.


처삼촌은 내가 미국에 가기 전 의사 교회로 소문이 자자한 

먹물들이 모인 교회였는데 어느 날 베뢰아 GD킴을 만나고부터

영의 양식에 이스트를 뿌려 발효되기 시작하였고, 막걸리에 취한듯 아슬아슬하게

작두를 타더니 발라당 넘어졌다.


똑똑한 먹물들이 뭐가 아쉬워 쉰내 폴폴 풍기는 밥을 먹겠는가?

교인 하나가 오면 둘이 가고 둘이 오면 넷이 나가니

알토란 교회가 쪽박 교회가 되었다.

한때는 화개장터 부른 사람과 민들레에 출연했던 배우가 부부의 모양만 있을 때 

출석했던 교회였는데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좋은 일엔 남이, 어려울 때는 피붙이를 찾아가 손을 내민다고 하였던가?

처삼촌은 자기 쪽으로 한 무더기 처 숙모 쪽으로 한 무더기 사돈에 팔촌까지 모았다.

쪽수는 많아서 백여 명이모였다.

변두리에 3 에이커를 사들여 예배당 짓고 후에는 기도원까지 지었다.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다 심심했던지 이번엔 회계를 4단계로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 

아니 회계가 무슨 3단 로켓이야?  

말년엔 가족들마저 떠나

강원도 산골짜기 어느 흉물스러운 폐가처럼 되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주랴,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의 일 년 수익을 주랴,

앙드레 복남 킴의 화려한 옷을 주랴, 

만리장성 중국집의 입에 쩍쩍 붙는 불도장을 주랴,

이 세상 그 무엇을 다 준다 해도 다 필요 없다.

제발 잠 좀 자게 해 다오. 


그렇게 노틀댐 칼리지는 형설지공의

수련장이 아닌 잠 못 자게 들들 볶는 고문하는 장소가 되어

고초당초보다 매운 시집살이 같은 지옥이더라.

아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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