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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8.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7

필리 치즈스택


 미국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 가운데 하나가 필리 치즈스택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유래한 이 음식은 인접한 볼티모어에서도 널리 분포되어

어디서든 쉽게 맛볼 수 있다.

이게 맛이 묘해서 중독성도 있고 부담 없는 가격에 배도 불러 아주 좋아한다.

 

자주 먹다 보니 배는 점점 불러 임산부처럼 되었다. 

그래도 눈을 떠도 감아도 생각나는 맛이다.

오리지널 필리 치즈스택은 길쭉한 빵 한 면을 갈라서 버터를 녹인 철판 위에

노릇노릇 굽고 얇게 슬라이스 한 소고기를 잘게 찢으면서 볶아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위에 하얀 크림색 내추럴 치즈를 올리고 녹여서 빵 안에 넣으면 된다.

좀 더 화려하게 먹고 싶다면, 싱싱한 양상추와 토마토 

그리고 철판에 버터를 녹여 양파와 피망을 볶아서 같이 넣어준다.

채소가 주는 와삭한 식감과 씹을수록 고기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의 감칠맛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3대 욕구가 다 들어있다.

식욕, 수면욕, 음 사랑 욕심까지.

왁스 페퍼로 한번 감고 알루미늄 포일로 한번 더 감싼다.

아무도 안 보는데 가서 한입 베어 물면 얼마나 황홀한지 "으음"하고 신음소리가 났다.

고기 좋아하셨다는 세종대왕도 입맛을 다시고 손을 내밀  바로 그 맛일 것이다.


동서는 그로서리를 하고 처형은 캐리 아웃을 하였다.

가끔  처형이 그 기막힌 맛의 치즈스택을 해주면 얼마나 좋던지 알루미늄포일 끄트머리에 

남아있던 국물까지도 알뜰하게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 더해 주시오? 하련만 끝내 그 말은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어가더라.


마누라가 있나 쌍둥이가 있나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밥도 

어느덧 눈치가 밥상 위에 올라앉아 숟가락, 젓가락 가는데 마다 쫓아다녔다.

눈칫밥은 먹어도 살로 안 간다는 말 있는데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설상가상 가족관계가 뭔지 한국에서는 미국으로 가서 고생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원망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인형 같은 아내에게 네 이년하고  달려가고,

미국에선 내 딸 왜 안 데려오느냐 냉큼 데려오지 못할까? 네 이놈 하며 호통이 추상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니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먹어도 먹은 거 같지 않고 시름이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서둘러 F-2를 신청하여  가족을 데려오려는데 한국에선

내 동생이 어떤 동생인데 더 이상 머나먼 미국 땅에서 박박 기는 모습은 볼 수없다며

나를 소환하기로 의견들을 모아 급기야 한국 소재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단다.

이후에 벌어진 상황은 가족을 데려올  F-2 비자는 보기 좋게 거절되었고,

이를 알게 된 미국에선 울화가 화산 터지듯 폭발해 버렸다.

한대 올려붙일 자세가 역력한 장인어른은 금방이라도 사위 턱뼈를 날릴 기세였다.


장인어른은 경찰 출신으로 남대문에 있던 치안본부에서 근무하셨더랬다.

대한민국에 스포츠가 걸음마할 당시 국가대표 수영선수셨고,

국기원이 보증하는 태권도가 5단이었다.

체신부에서 통신일을 하다 경찰에 특채되셨고,

작은 체구였지만 붕붕 날아다녔다고 한다. 

처 외삼촌이 그 모습에 반하여 북에서 월남할 때 손잡고 내려온 여동생의 배필로 낙점하였다.

생전에 꽃 중에 꽃을 부른 가수 원방현 그리고 

영등포의 밤을 부른 오기택이 후배였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장인어른이 정권으로 한방 먹이면 나가떨어질 판인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대신 처갓집에서는 쫓겨나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아 고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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