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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9. 2024

네박자 축복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8

  

 볼티모어의 겨울은 방금 갈아낸 고추냉이를 먹은 것처럼  맵고 습했다.     

 기어이 나는 처갓집을 나와 아내의 고종사촌 언니 집으로 가야 했는데

 태권도가 5단이신 장인어른의 정권 찌르기도 겁이 났지만,

그보다 더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에서 언제 발사될지 모를 눈치 화살 때문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한국에서 딱 한번 인사 한 인연으로 처 고종사촌 언니의

식료품 건물에 방 하나를 얻어 기숙하게 된 것이다.

볼티모어 다운타운에는 오래된 가옥이 즐비한데  저소득층 백인과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흑인들이 섞여서 사는 동네다.


집들은 대체로 3층 구조이며 촘촘히 이어져있다. 

몇 블락 건너 식료품점이나 

캐리 아웃 즉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다.

처고종사촌  여의도댁은 1층엔 식료품점 이층엔 주인이 거주하고 3층은

한국사람들에게 달세를 받았다. 

 

여의도댁 남편은 한국에서 콘크리트 전봇대며 

 하수관 따위를 만들어 파는 회사를 가지고 있었다.

 알짜복음 교회를  다녔는데 네박자 축복의 열렬한 신도였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무얼 드려도 아깝지 않아 헌금도 듬뿍듬뿍 생색나게 바쳤다.

 

친척이나 회사 직원들에겐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었는데

 마치 종 부리듯 위세가 대단하여 종업원과 겸상하는 일은 죽어도 없었다고 하였다.

 일하는 사람들에겐 김치와 멸치볶음 그리고 시금치나물 콩나물국이 전부인 조악한 밥상을 

 자기들은 삼단 찬합 안에 뱅어포에 장조림 김이며 소불고기 심지어 영광 보리굴비를 잘게 찢어 

 

참기름에 무친 반찬에  시원한 연포탕으로  거하게 차려먹는단다.

 친정 동생 하나가 미군을 만나 결혼한 후 볼티모어에 정착하였다. 

 언니는 네박자 축복의 마지막 퍼즐로 모아둔 돈을 차곡차곡 동생에게 보냈고

 그 동생은 차곡차곡 자기 통장에 쌓아 놓고 집도 사고 건물도 사고 가발 파는 가게도 샀다.

 

그렇게 언니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호주머니를 채웠다.

 이후에 언니가 미국에 들어와서 그동안 보낸 돈을 달라하니  무슨 돈? 하며 딱 잡아떼고 꿀꺽했다.

 꼼수로 송금한 여의도댁은 아야 소리도 못 하고 열심히 빼돌린 알토란 같은 돈, 네박자 축복의 마지막 

 퍼즐을 홀라당 빼앗기고 말았다. 


겨우겨우 식료품점 할 돈을 구걸하다시피 받아서  다운타운  험하고 무서운 지역에 

식료품점 하나를 차렸다.

기도를 얼마나 하는지 하루 종일 식료품점에서 일한 후 저녁에는 교회로 향했다.

밤을 새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기도 제목은 동생년이 꿀꺽한 돈을 토하게 해 주시고, 

주님의 손길로 동생년의 볼때기를 마구마구 이리저리 쳐 주시옵소서 하는 거였다.


또한 아들이 목사가 되어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불한당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딸도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를 사랑의 결정체로 알고

고등학교 다닐 때 제법 국물이 잘 우러난  진국 설렁탕 같은 연애를 하여

부모의 입술이 파랗게 되기를 여러 번 제발 한국 사람하고 결혼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더라지 간곡하게,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신지

아르메니아 사위를 허락하시더라. 

아마도 감사헌금이 너무 멀리 아르메니아 어느 지역까지 전달되어 응답된 것은 아닌지 짐작만 할터였다.

이후에 아들은 어찌어찌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였으나


식구들도 모이지 않는 교회가  운영될 리가 없어 이후에 들은 얘기로는 

목사 아들은 리커 스토어 즉 알코올 도수 높은 술을 파는 가게를 하게 되었단다. 

울 화병이 도져 남편은 병을 얻었고 여의도댁 또한 병을 얻어 

걸음걸이가 부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나오는 찬 바람은 이불을 뚫고 옷을 헤집고

급기야는 살을 파고 뼈까지 들어왔다.

얇은 담요 하나로 견디기에는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추위였다.

그 옛날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후암동에서 광야 같은 시간을 보낼 때.


철제 책상에서 올라오던 그 냉기가 다시금 내 몸을 파고들었다. 

하루하루의 삶이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살을 파고드는 냉기는 정말 혹독하고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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